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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다 메이어

last modified: 2015-03-18 20:39:00 Contributo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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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8년 5월 3일 ~ 1978년 12월 8일)

Contents

1. 소개
2. 초기 생애
3. 총리 재임
4. 어록


1. 소개

이스라엘의 정치인, 제 5대 총리(1969년 3월 17일~1974년 4월 11일)를 역임했다.

2. 초기 생애

골다 메이어는 골다 마보비츠(러시아어: Голда Мабовиц)라는 이름으로 러시아 제국(현재 우크라이나)의 키예프에서 태어났다. 1906년에 메이어의 가족은 미국의 밀워키로 이민을 갔다. 그녀의 아버지는 목수로 일했고, 어머니는 식료품 가게를 운영했다. 그녀가 여덟 살 때 가족을 위해 가게를 맡아봐야 했다고 한다. 1906년에서 1912년까지 특별한 재능을 가지고 있는 학생을 위한 Fourth Street School을 재학했다. 입학했을 당시 영어를 구사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수석으로 졸업했다. 현재 이 학교는 메이어의 이름을 따서 골다 메이어 학교라고 불린다.메이어가 14세였을 때 형편이 어려워져 그녀의 어머니는 학업을 포기하고 결혼하라고 권하자, 반항하고 덴버로 가출을 했다. 1913년 밀워키로 돌아왔다.1949년에서 1956년까지 노동 총리로 일했고, 1956년 데이비드 벤구리온 아래에서 공사가 되었다. 벤구리온이 그녀의 이름을 히브리어 이름으로 바꾸라고 요구하자 그녀의 성을 “메이어”(גולדה“빛을 만들다”를 의미)로 바꿨다. 1960년대 초 그녀는 림프종이 있다는 걸 발견했으나 1965년에 병이 심하게 악화될 때까지 비밀로 했다. 총리 레비 에슈콜이 돌연사하자, 1969년에 연합당은 그녀가 그의 자리를 잇도록 선택했다.

3. 총리 재임

헨 올림픽당시 검은 9월단이 이스라엘 선수 11명을 죽이자 메이어는 이에 대해서 모사드에게 테러리스트를 사살하라는 지령을 내렸다. 제4차 중동전쟁 당시 메이어는 시리아를 먼저 칠지 말지에 대해서 확실한 결단을 하지 못했고 결국 시리아와 이집트의 공격을 받게 되어 큰 위기에 처하게 되고 결국 미국의 지원으로 간신히 전쟁을 뒤집었지만 이때의 엄청난 피해로 인해 사임하고 1978년 12월 8일에 예루살렘에서 지병인 림프종이 악화되어 숨졌고, 12월 12일에 그녀의 사망지인 예루살렘에 매장했다.

4. 어록

그녀는 영국의 총리인 대처와 더불어 철의 여인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그래서 그런지 상당히 강인한 말을 많이 남겼다.

아랍국가들은 싸우고 질 수 있습니다. 돌아가서 다시 싸우면 되니까요. 그러나 이스라엘은 오직 한 번 질수 있습니다.

팔레스타인 같은 경우를 다시 찾아볼 수 있을까요. 언제 팔레스타인 인들이 독립국가를 만든 적이 있습니까? 1차대전 이전에 팔레스타인은 남시리아의 일부였고, 요르단의 일부였습니다. 우리가 팔레스타인을 파괴하고 팔레스타인인들을 내쫓았다고 하지만 팔레스타인인과 팔레스타인국가라는 것 자체는 없었습니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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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이런 그녀의 팔레스타인에 대한 시각과 더불어 그녀는 세파라딤들을 상당히 싫어했고, 이 때문에 세파라딤들은 그녀가 죽은 날 축포를 쏠 정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