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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환

last modified: 2018-02-25 19:35:37 Contributors

Contents

1. 포유류 수컷의 정소
1.1. 개요
1.2. 해부학적 특징
1.3. 고통
1.3.1. 고문 수단(!!!!!!!)
1.4. 성감대
1.5. 매체에서
1.6. 기타
2. 북위, 동위의 실권자로 북제의 기틀을 마련한 사람
2.1. 개요
2.2. 뜻을 세우다
2.3. 이주영에게 의지하다
2.4. 이주조에 대항하다
2.5. 실권을 잡다
2.6. 효무제가 달아나다
2.7. 서위와 동위의 대결
2.8. 죽음


1. 포유류 수컷의 정소


  • 이 항목은 불알,부랄(...),봉알(...),음낭(...),정소(...)로 검색해도 들어올 수 있습니다. 단, fire egg로는 들어올 수 없다(...).
  • 이 항목은 남성 한정으로 읽어보기만해도 겁나 아프게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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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Testicles, testis, Testes[1], fire balls, fire egg burari
한자: 睾丸 불알 고(옛날에는 불 고)에 둥글 환이니 정녕 한자로도 불알이다. 火卵 불 화에 알 란이다. 뜻이 불알(...)

1.1. 개요

포유류 수컷의 정소[2]로, 뒷다리 사이에 외부로 노출되어 있다.

불알, 낭심등으로 부르기도 하며 남성의 주 생식기관 중 하나로 정자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또한 남성호르몬을 분비하는 기관이기도 하다. 생물학적으로 볼 때 대단히 중요한 기관이어서 그런지 이 곳을 잃어버리는 것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죽는 것에 버금가는 일로 여겨졌다.

2차 성징과 관계 없이 아프기 때문에 초등학생부터 노인까지 만국공통 남노소 남자라면 요람에서 무덤까지(...) 고통을 보장해주는 곳이다. 그리고 남자라면 맞는 장면만으로도 그 고통을 함께 느낄 수 있는 부위.

많은 남성들이 음경 뿌리 부분은 물론 고환에도 음모가 나는데 사람에 따라 다르지만 체모가 많이 나는 사람은 남녀 관계는 물론 일상생활에도 지장이 올 정도로 수북하게 자라는 경우(주로 북유럽, 중동 남성들)도 있어서 거슬리면 적당히 제모해주는 것도 위생이나 활동성 면에서 좋다. 참고로 고환 부분의 털을 제모할 때는 주의하자. 바리캉이나 안전 면도기 등을 사용할 경우 고환 피부에 주름이 잡혀있기 때문에 까딱하면 베일 수 있다.(...) 그러니까 되도록 베일 염려가 없는 전기 면도기를 사용하자.단 성능이 좋지 않거나 충전을 재데로 하지 않으면 털을 쥐어 뜯는듯한 느낌이 들 것이다(...) 자극이 적은 제모제나 왁스도 방법이 될 수 있다.

의학용 사진 찍을 때나 남성의 알몸 촬영시엔 성기와 고환 부분의 털을 싹 면도하고 찍은 사진이 위키피디아에 나오는데 그 모습이 글자 그대로 크고 아름답다.

1.2. 해부학적 특징

고환의 표면 고환의 단면
이걸 잘랐다구요? 단면을 보는 것만으로도 곶통이 느껴진다 자신도 모르게 아래쪽에 손이 간다

인간 남성의 고환 용적은 한쪽당 평균 약 18cc 이며, (개인에 따라 3cc 정도의 차이가 있다.) 이는 메추리알과 비슷하거나 조금 더 큰 정도이며, 양쪽이 미묘하게 사이즈가 다른 경우가 많다. 일부 학자들은 인간의 고환이 짝짝이가 된 이유로 보행이나 착석시 한쪽이 크게 되면 두개가 자연스레 교차하여 좌우로 평행한 것보단 허벅지에 낑기거나 온도가 높아지는 것을 어느정도 완화할 수 있는 것을 이유로 들기도 한다. 남성 위키러라면 실제로 한쪽 고환이 좀 더 아래로 내려가 있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아니 그렇다고 지금 확인하려고 하진 마라.

태아의 고환은 원래 뱃속에 있다가 서서히 아래로 내려오는데 내려오면서 복막에 싸인 채로 내려온다. 즉 피부를 지나치면 바로 복막이 드러날 정도로 가깝고 신경은 예민하다. 그래서 배가 아픈 거였군

이러한 구조 때문에 실제로 탈장이 잘 일어나는 곳도 고환의 부위이며 이 경우에는 장이 고환 주머니까지 내려와 커진다.(의학적 용어로 '서혜부 탈장'이라 한다.) 반대로 고환이 뱃속에서 안 내려오고 걸리는 경우도 있다(의학적 용어로 정류고환이라 한다.) 한쪽일 경우에는 20%, 양측이 모두 잠복일 경우 대부분 불임이 예상된다.

중요한 곳이라면 몸 깊은 곳에 있는 게 더 안전한데도 불구하고 그렇게 늘어져 있는(...) 이유는 고환이 만드는 정자가 열에 약하기 때문이다. 정자 생성의 최적 온도는 32~34℃로, 그보다 높거나 낮을수록 생존성은 줄어든다. 그런데 우리의 체온은 36.5℃이기 때문에 고환을 몸 밖에서 식힐 필요가 생긴 것이다. 가끔씩 고환이 아래로 내려오지 않고 복강에 남아 있는 질환인 정류고환을 가진 사람이 있는데, 몸 안의 정류고환에서는 정자가 만들어지지 못해 고자불임이 되며 합병증으로 탈장이나 고환암이 동반되기도 한다. 참고로 장시간 앉아 있으면 허벅지에 의해 고환의 온도가 올라간다. 그렇다. 이 글을 보고 있는 당신의 고환도 위험하다. 그니까 남자답게 당당히 서서 위키질하자 랩탑 컴퓨터를 이름 그대로 다리 위에 올려놓고 사용하면 노트북에서 발생하는 열이 고환을 덥혀서 남성불임을 발생시킬 수도 있다. 이 경우 랩탑을 다리에 얹고 사용하는 것을 중단하면 얼마 지나지 않아 회복된다고 한다. 뜨거운 물로 목욕이나 샤워를 하는 것도 정자 생존성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씻고 난 뒤에 마무리로 적당히 시원한 물을 뿌려서 식혀주는 것이 좋다고 한다.

날이 더울 때 더욱 늘어지고 추우면 오그라드는 메커니즘도 열과 관계된 것이다. 너무 추워도 문제기 때문. 몸으로 고환을 올려서 미래의 자식들을 따뜻하게 지켜준다. 심지어 고환에 주름이 잡혀있는 것도 주름 때문에 표면적이 늘어나 열을 발산하기 유리하기 때문이다. 즉 열판인 셈. 오오 인체의 신비... 그래서 냉각을 위해 수시로 움직이는 것을 알 수 있다. 심지어는 몸은 가만히 있어도 불알은 숨쉬는 것처럼 미묘한 수축 팽창을 반복한다.

고릴라의 고환은 그 거대한 덩치에도 불구하고 두 개의 무게가 30그램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침팬지는 사람보다 덩치가 작지만 120그램. 사람은 4~50그램이다. 이렇게 같은 유인원인데도 체중 대비 고환 크기가 차이나는 이유는 이들의 생식 양상이 다르기 때문이다.

고릴라는 알파 메일 하나가 여러 암컷을 거느리고 전부 자기 자식만 얻는다. 반면 침팬지는 무리 사이에서 난교하듯 한 번에 여러 수컷이 여러 암컷과 교접하는데, 당연히 한 암컷에게도 수컷 여럿이 달려들 수 있다. 이렇게 여러 다른 수컷들의 정자가 경쟁하는 상황에서 한정된 난자에게 자신의 씨가 수정될 확률을 올리려면 1회 사정에 많은 수의 정자를 넣어야 하고, 그 때문에 고환 기능을 향상시켜 크게 발달한 것. 반면 고릴라는 경쟁이 전혀 없이 그냥 자기의 정자만을 여러 암컷에게 마구 주입(…)할 수 있으므로, 자궁과 나팔관을 헤쳐서 수정이 가능할 정도의 정자만을 한번에 내보낼 수 있으면 된다. 고환은 사실 생식 능력 이외에는 여러모로 약점 같은 곳이며 어느 장기든 클 필요가 없다면 작은 것이 에너지 소모 등에서도 유리하므로 작아진 것. 사람은 일부일처가 대세이므로 이들의 중간이다. 그럼 옛날에는 컸단 말인가 그럼 루리웹 웹마스터는...

사실 영장류뿐 아니라 [3], 혹은 곤충까지 암수가 교미하는 동물들의 생식기관(특히 정소) 크기는 이렇게 교미 형태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그리고 아주 가끔 성장기에나 성행위중 고환이 꼬이는 경우가 있는데 이게 심할경우 하반신이 마비되는 것 같은 통증이 온다고 한다! 이것은 고환염전이라 하는데 만약 이게 의심된다면 6시간 이내에 병원에가서 심하면 수술을 해야한다. 6시간이내에 못간다면 고환이 썩어버린다고한다... 내가 고자라니!

1.3. 고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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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증은 단순히 손발가락 잘린거와는 다른데, 고환이 그렇게 아픈 이유는 원래 고환이 장의 일종이기 때문이다. 장 자체는 신경이 없지만 장을 둘러싸고 있는 복막은 인체에서 가장 감각 신경이 발달한 곳 중 하나이다. 피부를 지나치면 바로 복막이 드러날 정도로 가깝고 신경은 예민하기에 맹장염이나 장천공에 준하는 통증이 나타난다. 심지어 아프기만 한 것이 아니다. 심하면 죽는다. 어느 군사 잡지에서 다룬 '총상이 가져오는 신체적 피해'에 의하면 여기가 총에 맞으면 하복부의 장기에도 아주 심각한 피해를 가져와서 심하면 사망할 수도 있다 심영: 아니 이게 무슨소리야!. 통각이나 출혈이 심각하고 사망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높은 만큼 갑옷이나 방탄복으로 지키는것은 당연. 이때문에 방탄복뿐만이 아니라 옛날 갑옷들은 보통 이곳에 방어용으로 철판을 덧대놓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격렬한 전투를 하면 노리지 않아도 얻어맞게 돼있다. 스포츠중에도 가끔 사고가 발생해서 데굴데굴 구르게 되는 원인. 남자의 슬픔.(...)사실 죽지 않아도 달아놓아야 할 것 같지만...

여성들 중에는 고환이 아닌 음경을 '남성의 급소'라고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 나중에 무슨 일이 있을지 모르니 진실을 알려주지는 말자 여성 위키니트가 있다는 사실을 잊고 있구만. 하지만 고환 만큼은 아니더라도, 음경 역시 역시 혈관과 신경이 모여 있는 곳이기 때문에 맞을 경우 다른 곳보다는 2~3배 아프다. 여성도 역시 사타구니사이에 음경과 대등하게 신경이 많이 모여있는 음문이라는 기관 존재하기 때문에 맞으면 고간을 맞으면 다른 곳보다 2~3배 아프다. 그렇기에 여성 역시 고간을 맞으면 아프다며, 엄살부리지 말라고 주장하는 경우가 있는데, 위를 읽으면 알겠지만(...) 고환은 이것보다 더 심각하게 고통스럽다는걸 여성들은 잘 모르기 때문에 하는 말. 비슷한 경우로 '가슴이 아프냐 고간이 아프냐(...)' 하는 주제로 양성이 병림픽을 벌이는 경우가 간혹 있는데, 위를 보면 고통은 고환이 더욱 크다. 하지만 가슴 역시 주로 지방과 기타 조직, 림프절과 유선 등이 위치한 민감한 기관이다. 게다가 실질적으로든 감성적으로든 근육 단련이 극히 힘든 기관이므로 외부 충격에 굉장히 약하고 충격시 통증도 강하다. 즉, 가슴 역시 아프다. 그러니 누가 더 아프냐는 걸 떠나서, 그냥 둘다 아프니까 서로 배려 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 하다.

덕분에 남성은 본능적으로 이곳을 보호하려는 특성이 있다는 말이 있다. 팔의 길이가 마침 손으로 이곳을 보호하기 딱 좋을 정도로 되어있다는 말도 있지만...농담이겠지. 마취과 의사들이 환자가 깨어날 때 즈음 가장 신중하게 방어하는 부위이기도 하다. 가끔 환자가 술을 마신 듯 행동하는데 하필이면 환자의 위치가 딱 고간의 위치와 비슷한 높이다. 어깨만 조금 돌리면 바로 잡힌다고.

종류를 막론한 격투 종목에선 급소 부위 중 하나이기 때문에 공격은 물론 조그마한 자극조차도 반칙으로 규정한다. 맞을 경우 말 그대로 치명상. 방탄복에 괜히 성기 보호 부위가 있는 게 아니다. 여기 총 맞으면 안되겠소 쏩시다! 성불구가 문제가 아니라 그 이후 전투 수행 자체가 불가능하게 된다. 맞는 순간 미소지으며 팔을 벌린 예수님을 왼쪽에서 볼 수 있고, 오른쪽에서 좌선하며 염불을 외고 계신 부처님의 모습을 볼 수 있다 통증이니까 어느 정도는 훈련으로 참을 수 있게 되지만 과 이곳만은 단련이 힘들다. 하지만 외국의 어느 무도가가 이것을 단련했고 또한 방송에서 인증을 했다. 충공깽. 인간을 초월했군. UFC 초창기의 한국계 미국인 출신 파이터 조 선이 아주 유명한데 붙잡힌 상태에서 여기를 십수 방을 맞고도 KO 당하지 않았다.(...) 그리고 팬티를 벗기려고 해서 항복.(...)

위에서도 설명되었듯이 격투 종목에서 이곳을 가격하는 건 금지되어있지만 생존/호신에 중점을 둔 크라브 마가에서도 (특히 여자들에게) 적극 권장하는 공격법이다. 아니, 특정 무술만이 아닌 호신을 다룬 거의 모든 무술에서 이곳을 공격한다. 기본이나 다름없다. 여성이 익히기 좋은 호신술로 널리 알려진 크라브 마가의 경우 고자킥이 거의 상징으로 여겨질만큼 이곳을 걷어차는 기술이 매우 많다.

1.3.1. 고문 수단(!!!!!!!)

하 시발 이건 아니잖아
고환은 독재국가의 공권력이 제일 사랑하는 신체부위이며 뭉개고 터트리고 으깨고 발라내어지는 동네북이기도 하다. 옷을 입으면 겉으로는 티가 안 나고 터트릴 수 있는 게 2개나 있어서 그렇다. 일제시대 경찰은 연행된 사람의 불알을 뺀찌로 으깨거나 바늘을 꽂아 고문했으며 피노체트 치하 칠레에서는 심문을 시작하기 전 이유불문하고 연행 당한 사람의 불알을 가격한 다음 심문을 시작했다고 한다.으아아.. 이런 쳐죽일 놈들 얼마나 효과가 좋았던 지 DINA(칠레 보안군)은 음낭을 진실을 담은 주머니(Bolsillos de la verdad) 라고 불렀을 정도.그리고 죽었다.

실제 고환은 단순히 통증 큰 부위가 아니다. 부피에 대비해서 혈관밀도가 매우 큰 곳이고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지혈도 안 되기 때문에 일단 터지거나 찌부러진 상태가 된 상태에서 빠른 시간 안에 응급처치, 수혈, 수술 등의 의료적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면 계속 가격해서 쇼크사시키지 않더라도 과다출혈로 죽는다.[4] 위의 고문 사례에서도 죽는 경우가 대다수였고, 일단 그 이전의 조선시대나 중국 환관들만 봐도 거세 과정에서의 쇼크사만 있었던 게 아니라 모든 과정(?)이 끝난 이후에도 지혈이 안 되어 출혈이 멈추지 않아 죽는 사례가 많았다. 환관이 선발되었던 문명권에서는 나름대로 거세의 후유증을 완화시키기 위한 절차를 이것저것 도입했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대 의학기술 및 위생관념의 한계로 감염 때문에 죽는 사람들도 많이 나왔다.

그렇기 때문에 개그물 등에서 고통을 강조한다고 해서 단순히 통증만 심하고 고자만 되면 끝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 출혈량이 어마어마하여 죽을 수 있고, 고환 손상이나 파열 직후 빠른 조치가 없으면 내부에 감염도 빨리 일어나서 여러 신경계 및 근육조직 내 감염으로 주요 조직 손상까지 올 수 있어서 치료 이후에도 여러 장애가 생기는 경우가 많다. 고환 부상 후 제대로 조치하지 못하여 허벅지 쪽까지 문제가 생겨 평생 후유증으로 똑바로 걷지 못하고 지팡이를 사용하는 장애인이 되는 경우도 있다.

1.4. 성감대

여느 민감한 부위들과 마찬가지로 강도만 조절하면 쾌감을 느낄 수도 있다. AV를 보다보면 라치오 하면서 여기도 입으로 애무하는 장면이 보이기도 한다. 조, 좋냐? 다 그런 건 아니고 개인차가 크다고 한다. 민감한 남자는 약간만 흡입(?)당해도 바로 이상야릇한 신음성이 흘러나온다. 신음 안 하면 아무것도 안 느껴지는 줄 알고 여자가 실망한다카더라 열심히 으헛헉헉 해주자 난 별로던데.....좋더라어째 이 취소선들 겁나 오싹하다당신에게 M성향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바로 중독된다. 단, 이걸 다루는 경험이 적은 여성이 시도하면 고통이 수반되는 경우도 많다. 소중한 부위니까 관리에 주의하라고 파트너에게 항상 상기시켜주자. 사실 기분 자체는 둘째치고 여자가 거길 흡입해준다는 상황에 더 흥분이 되는 경향도 있다.하지만 여자가 아닐수도 있다 민감한 부위를 빨아주는 거니 반응이 있는 건 당연한데 여자가 해주니까 좋은 거다. 사실 AV에 나오는 것처럼 빨아대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대개 부부생활을 하는 경우에는 부드럽게 입술과 혀로 열기를 전해주기만 하는 것이 테크닉의 포인트.애들은 가라
여자에 따라서 이걸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 뭔가 재미있다나. 아니 뭐가?말랑말랑한 것이 마음에 든다 아무래도 신체적으로 훨씬 강자인 남자가 급소를 훌렁 드러내놓고 여성앞에 무력하게 누워서 끙끙대는 게 쥐락펴락 당하는 게 재미있는 듯(...). 관계자위행위사정을 하기 직전에는 고환이 올라와서 몸에 밀착된다. 정자와 정액 배출을 돕기 위한 장치다.인체의 신비

정확히는 음부주위의 피부중 음낭 피부가 성감대인것이지, 고환 자체에서는 성감을 느끼지 않는다. 당연히 핥아주거나 쓰다듬는 정도로는 아플리가 없다. 이걸 싫어하는 사람은 단순히 성감대가 아니라서 그런거. 성감대는 개인차가 크다. 그외에는 정신적인 흥분감이며 역시 이때에도 고환 자체의 감각과는 상관없다.

SM 플레이에서 M성향을 가진 남성들이 이곳을 상대방(주로 여성)에게 발로 차이거나 주먹으로 강타당하는 등의 플레이를 즐기는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 국내에서는 볼버스팅으로 불리고 있다. 이러한 것을 시행해 주는 성인업소가 존재하고 당연히 이것을 이용하다가 적발되면 불법. 개인차가 있지만 여성에게 운동화나 하이힐! 등을 신기고 차이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소프트한 컨셉으로는 맨발로 차기도 한다고 한다.

정확히 이 2개의 알 자체가 충격을 받아서 아프건보다는 그것과 연결된 각종 신경줄 등이 차였을때 고통이 아주 상당하다. 성적농담으로 말하자면 남자들은 그것과 연결된 신경체 부분을 만져보자. 상당한 고통을 느낄 것이다.

외국에서는 이러한 사례도 있었다고 한다.#(영문)

간단하게 말하자면...
지나가는 여성에게 발로 자신의 영 좋지 않은 부위를 차달라고 했고 이에 상당수의 여성이 이 남성의 부탁을 들어주었지만 남성은 아무짓도 하지 않았을뿐더러 도리어 고맙다고 하면서 자전거를 타고 사라졌다고 한다(...). 그리고 이 남자는 도합 일곱명의 여성에게 자신의 그곳을 차달라고 한 죄로 감옥에 갔다.(!) 성희롱내지 성폭력으로 취급받은듯.

1.5. 매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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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러가기 안 돼.(...)

사무라이 플라멩코의 영웅(히로인)(...)인 플라멩코 걸이자 플라멩코 다이아몬드인 마야 마리와 플라멩코 걸즈의 루비인 미사와 미즈키와 사파이어인 미즈키 모에.

절대! 절대 따라하지 말자 순화(?)한 내용이라 그런지 비명이 많이 약하다.

왠지 미디어에선 남자보다 여자한테 많이 걷어차인다. 남자라면 살면서 한두 번은 맞아봤기 때문에 피해자가 '으아아아!' 하며 굴러다니는 걸 보고 있으면 엄청난 공감이 돼서 괜히 고통이 싱크로되는 현상이 발생한다.(...) 사실 남에게 직접 타격을 당하는 일보단 축구,야구,배드민턴 같은 구기 종목 경기 중에 공에 맞는 경우가 많다. 아마 이 글을 읽는 남자들 중 상당수가 한 번쯤은 축구공에 그곳을 맞고 눈 앞에 나타난 별을 보며 뒹굴었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충격은 금딸의 일수에 비례한다는 말이 있으나 고통의 근원은 복막이므로 그렇지않다. 대게 여자아이에게 짓궂게 농담하고 장난치거나 희롱하다가 차이거나 이별을 통보하거나 다른 여자와 바람피우다 들통이 나서 여자에게 차이는 장면들이 나온다. 예능 프로그램의 경우 몸개그의 소재로 사용하거나 웃음을 주기 위해서 반칙기술로 사용 한다던지 장난삼아 때린다던지 하는 장면이 나온다. 물론 재미 있다고 따라하지 말것. please don't try this(...) 장난이 아닌 폭행이다.

후타나리 캐릭터에 한해서 모에속성으로 작용하기도 하며 창작자의 취향에 따라서 부착된다. 형태는 보통 남성의 것과 같은 생김새이지만 간혹 여성기가 가려지는 것을 막기 위해 약간 다른 형태로 그려지는 경우도 있으며 크기는 일반적인 사이즈부터 후타나리에 심취하지 않았다면 혐오감이 들 정도로 거대하게 그려지기도 하는 등 다양하게 표현된다.

사실 비단 후타나리 캐릭터 뿐만 아니라 여성들에게 있어서는 상당한 모에속성으로 작용한다.(...) 만지는 느낌이 좋다는 것도 있고 모양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관계시 툭툭 치는 느낌이 좋다고 하기도 하고.또한 어떻게 보면 남성 입장에서는 여성에게 약점 부위를 순순히 노출하고 있는 셈이 되니 여성 입장에선 묘한 우월감에 서기도.

이것에 충격이 가해질 때는 남성들과 비슷한 고통을 받는 것으로 묘사되기도 하는데 BDSM이나 고어물에 등장하는 경우에는 이 부위를 집중적으로 가학당하며 심지어 거세 당하기도 한다. 내가 고자라니!

방울이라고도 불리고 코끼리가 되기도 한다(코는 그것...). 일본어로는 킨타마(金玉)라고 불리며 심심하면 시모네타의 소재가 된다. 은혼의 독음 긴타마도 발음하나 잘못하면 이게 된다는게 개그 소재로 지겹게 등장.

모 가상의 권법에서는 기를 아작내버리는 오의도 존재한다. 참고로 어떤 무도가는 이것을 뱃속에 집어넣는 방법으로 치명타를 피하는 비기(...)를 가지고 있다. 아니면 아예 잘라버린다던가.

고환의 순화용어로 영 좋지 않은 곳이 자주 쓰인다. 유래는 위의 의사양반의 극중 대사.

FPS 게임에서 죽은 시체의 얼굴 위에 엉덩이를 위치시키고 앉았다 일어났다 하는 도발 행위를 '데드맨 크라우칭' 내지는 'Tea bagging'이라고 한다. 이 말의 어원은 홍차 같은 것의 티백을 잘 우려내기 위해 위아래로 넣다뺐다 하는 그런 동작에서 나온 것인데 늘어진 무언가를 넣었다 뺐다 하는 것이 마치 티백 같다고 하여 나온 영 좋치 않은 의미. 가끔 가다 FPS 중에서 적의 이 곳을 맞추면 헤드샷처럼 특수 판정을 띄워주는 게임도 있었다. 컴뱃암즈져 오브 포츈 온라인등.

TPS 슈팅 게임인 스나이퍼 엘리트 V2에서는 원거리의 적을 저격할 경우 슬로우모션 킬캠을 볼 수 있는데, 이 킬캠이 엑스레이처럼 맞는 부분과 그 주변의 뼈와 장기를 보여준다. 문제는 고환을 맞추면 고환이 터지는 것을 감상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당장 유튜브에 Sniper Elite V2 kill cams를 치면 헤드샷이나 저격전뿐만 아니라 고환 까부수는 영상도 다수 나오며, 리그베다 위키의 해당 게임 항목에도 Robbaz가 이 곳을 노리는 영상이 링크되어 있다. 이 고환 사격은 독일군이고 소련군이고 암살 목표고 공평하게(...) 당할 수 있다. 심지어 DLC에서는 실력만 좋으면 히틀러의 그곳을 저격할 수도 있다. 여담이지만 난이도를 높여서 풍향, 중력 등이 적용되면 맞추기 은근히 어렵다(...). 너무 높이 쐈다가 심심하게 복부에 맞거나, 중력 때문에 다리에 맞아서 한 방이 안 뜬다. 심지어 후속작인 스나이퍼 엘리트 3에서도 더 화려한 그래픽(...)으로 구현되었다. 게임 자체는 그래픽이 괜찮은 평작 수준이라는 소리를 듣는데, 이상하게 이 고환 사격 요소는 유명하다.

1.6. 기타

  • 일본의 어느 무도가는 "발가락과 발가락 사이에 한 방을 먹이면 제 아무리 건장한 남자라도 꼼짝없이 때려눕힐 수 있다"라고 했는데 그 "발가락과 발가락"이란 바로 "엄지발가락과 엄지발가락"이다. 충공깽. 어느 무술책에서 취객이 추태를 부릴 때 여길 좀 강하게 잡으면 취객의 추태가 멈추는데 아주 특효약.(...)

  • 비슷한 예로 경호원들을 대동하는 고급 술집의 경우 난동을 부리는 손님을 제압할 때 쓰는 방법이 고환 쥐기. 힘을 많이 주지 않아도 제압이 가능하고, 설령 세게 쥐어 멍이 든다 해도 경찰에게 그 부위를 당당히 공개하기는 껄끄럽기 때문에 고소를 당할 위험도 적다. 그러다가 터지면 감옥간다는 걸 모르네.

  • 카스트라토가 되기 위해서는 거세를 해야 했지만 이것을 잘라내는 물리적 거세는 아니고 양잿물을 이용한 화학적 거세를 했다고 한다.

  • 고양이를 기르는 사람들의 경우에는...땅콩이라고 부르는 경우가 있다.

  • 남성 첼로연주자의 경우 연주중 이곳의 고통을 느끼는 질환이 존재한다.

  • 오래 된 친구불알친구라고 하기도 한다.

  • 소련어떤 서기장 아저씨는 당시 베를린을 이것에 비유하였다. 서방세계가 아파서 울부짖게 하고 싶을 때마다 베를린을 꽉 움켜쥔다고 한다나. 뭐요? 이보시오, 이보시오! 서기장 동무! 아니 내가 고자라니 이게 무슨 소리야! 내가 고자라니!

  • 루리웹의 운영자인 이 사람은 이게 크기로 유명하다. 개그를 넘어 숭배와 찬양의 대상. 지구상에서 운영자 불알 찬양하는 동네는 여기밖에 없을 거야

  • 옛날 이스라엘인들과 로마인들은 맹세의 표시로 서로의 고환을 잡고 맹세했다고 한다.

  • 14년 7월에 개봉한 레이드 2 : 반격의 시작에 중2병틱한 망치걸(...)이 등장하는데, 양 손에 망치를 들고 사람을 그냥 때려눕히는 인물인데 레이드2의 미공개영상에서는 망치걸을 소개하는 영상이 나온다. 그 영상 첫 장면에서는 망치걸이 들고 있는 망치의 장도리에 남자고환이 그대고 찍혀있는(.....)장면이 나온다. 게다가 더욱 멘붕인건 그 곳을 돌려 찢어버린다. 밑으로 떨어지는 고환형체가 참 비극적이다.

  • 한국에서는 한짝당 300만원이라 카더라 사실 이건 형사 소송 상 남의 몸을 상하게 한 죄, 과실치상죄에 대한 벌금이고 피해자가 자신의 몸을 손상시킨 배상을 하라고 요구하는 민사 소송에 대한 배상이 아니다. 피해자가 고소미를 시전하면 저 가해자는 높은 확률로 피해자에게 배상금을 내야할 것이다. 물론 영구적으로 사람을 장애인 만들어놓고 형사처벌이 고작 300만원인것에 대해 비판은 가능하다..

  • 개그맨 이정수는 이곳이 매우 건강하다고 하여 고환왕으로 불리기도 했다.(...)

  • 어떤 인물은 LG 트윈스는 지구가 멸망할때까지 안된다며 저주를 퍼부으며 자신의 불알털을 걸었지만 불과 3년만에 자신의 불알털을 다 밀고 인증하게 생겼다. 그러나... 항목 참조.

  • 디씨, 루리웹, 배틀페이지 등의 인터넷 커뮤니티의 유머게시판 등지에서 철 지난 유머나 허무개그 등이 올라오는 경우 리플에 하하! 작성자님의 유우머에 작성자님 부랄을 탁! 치고 갑니다^^ 라는 댓글이 달리기도 한다. 사실 이건 오래된 개그에 아저씨 개그라고 빈정대기 위해 아저씨스러운 말투로 하하! 작성자님의 유우머에 무릎(또는 이마)을 탁! 치고 갑니다 라는 댓글을 단 것이 어느 새 무릎을 부랄(...)이라고 변용해서 사용하게 된 것이 유래. 이 드립은 점점 변형되서 하하! 작성자님의 부랄에 유머를 탁! 치고 갑니다^^, 작성자님의 부랄에 무릎을 탁! 치고 갑니다^^, 탁! 하하의 부랄에 작성자님을 유우머 치고 갑니다 등등 다양한 변용이 보이기도 한다. 부랄! 부랄님의 부랄에 부랄을 부랄!치고 갑부랄!
    • 줄여서 회유불탁이라고 하기도 하는데, 한자성어인줄 알고 검색했다가 경악하는 사람들이 꽤 된다.

  • 미국에서는 ' 록키 마운틴 오이스터 ' 라는, 소 고환을 이용하여 만든 음식들이 존재한다. 대부분 조리 후 먹으나, 미국의 어느 한 프로그램에선 이것을 생으로 먹었다. 소 : 말도 안된다구 엏헣헣 그 외에 생존왕 유목민에게 받은 염소고환을 먹은적이 있으며, 사막에서 낙타의 고환을 생으로 먹기도 했다. 물론 먹고나서 죄다 토했다(...).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끔찍한 맛이라는 듯.

  • SBS의 최후의 툰드라라는 방송에서는 아직 살아 바둥거리는 순록의 고환을 그대로 뜯어먹는 장면이 나오기도 했다.※혐오스러울 수 있으니 클릭주의 보는 사람이 다 무섭다 우리나라에서도 우랑, 혹은 미자[5]라 해서 지금도 식용으로 사용한다.

  • 토리코팔왕인 원왕의 신체의 일부라는 아카시아의 식재료 페어의 정체는 원왕의 고환이다.
  • 스타크래프트2에는 오는 자들을 모두 고자로 만드는 맵이 존재한다.

  • 사우스 파크에 나오는 주연 에릭 카트맨은 이것을 빨라는 말버릇이 있다.


2. 북위, 동위의 실권자로 북제의 기틀을 마련한 사람

高歡
(496 ~ 547)

2.1. 개요

는 하륙혼(賀六渾)으로 원래 북위 발해(渤海)군 수현(蓨縣) 사람이지만 본인은 북위 6진 중의 하나인 회삭진(懷朔鎭)에서 태어났다. 고환의 집안은 한족이었지만 할아버지 고밀(高謐)이 북위 정권에서 관료로 지내다 죄를 얻어 회삭진으로 이주했다. 이 후 고환의 조상은 회삭진에서 살아 선비족의 풍습에 익숙했다. 고환의 아버지는 고수(高樹)[6]였고 어머니는 한씨(韓氏)[7]였으며 그들의 장남이었다.

2.2. 뜻을 세우다

어린 시절 고환은 아주 가난했기 때문에 그는 북위의 옛 수도인 평성(平城)에서 머슴으로 살았다. 하지만 고환은 잘생겼고 능력도 있었기 때문에 선비족인 누내간(婁內干)의 눈에 띄어 그의 딸 누씨(婁氏)[8]와 결혼했다. 이 결혼으로 돈이 생겨 말을 하나 샀고 그는 팽성과 수도인 낙양 사이의 공문을 전달하는 일을 했다. 519년 재상 장이(張彝)가 군인들에 대한 차별 정책으로 인해서 낙양에서 군인들의 폭동이 일어났을 때 고환은 낙양에 있었다.

성난 군중은 장이의 집에 쳐들어가 장이를 죽여버렸는데 효명제(孝明帝) 원후(元詡)의 섭정을 맡고 있던 영태후(靈太后) 호씨(胡氏)는 폭동을 일으킨 주동자 8명을 제외하고는 거국적으로 용서를 해주 었다. 고환은 영태후의 행동을 보고 실망했고 북위는 곧 무너질 것이라 생각했다. 비상상태가 일어나면 재산이 무슨 소용이냐며 고환은 평성으로 돌아와서 재산을 팔아 그 돈으로 세력을 형성했다. 그럭저럭 사람들이 모였는데 그의 매형인 위경(尉景)을 비롯하여 사마자여(司馬子如), 유귀(劉貴), 가현지(賈顯智), 손등(孫騰), 후경(侯景), 채준(蔡儁) 등이 모였다. 이들은 한 지방에 자리잡고 불법을 보면 직접 나서 손을 봐주곤 했다. 525년 육진의 난이 일어나자 고환의 무리는 두낙주(杜洛周) 부대에 합류했다가 두낙주에게 실망한 고환은 곧 그 무리에서 탈주했다.

2.3. 이주영에게 의지하다

이 후 갈영(葛榮)의 부대에 합류했지만 결국 북위의 장군 이주영(爾朱榮) 밑으로 들어갔다. 이 때 유귀는 이미 이주영 밑에 있었기 때문에 이주영에게 고환을 칭찬했으나, 고환을 만나본 이주영은 별로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고환이 아주 훌륭한 야생마를 길들여 이주영에게 주자 이주영은 고환을 다시 보게 되었고 이 후로 아주 가까워졌다. 528년 효명제는 영태후와 그녀의 연인 정엄(鄭儼), 그의 친구 서흘(徐紇) 등이 조정을 장악하고 있는 상황에 불만을 가지고 이주영에게 밀명을 내려 낙양으로 와서 영태후와 정엄 세력을 척결해달라고 밀서를 보냈다. 이에 이주영은 낙양으로 진격하고 고환은 선봉장을 맡았다. 이 소식을 들은 영태후는 효명제를 독살하고 조카 원쇠(元釗)를 황제로 삼았다. 하지만 이주영은 원쇠를 황제로 인정하지 않았고 효문제의 조카 창락왕 원자유(元子攸)를 황제로 삼은 다음 그대로 낙양으로 진격하니 그가 효장제(孝莊帝)이다.

이주영은 낙양을 점령하고 영태후와 원쇠를 황하에 던져버렸으며[9] 조정 관료들은 그에게 복종하지 않으리라 생각해서 효장제의 형제들을 비롯해 관료들 2천여명을 황하에서 학살했다. 이것이 2천여명을 죽음으로 내 몬 하음의 변이다. 이에 효장제는 질려버렸고 이주영에게 황위를 내놓으려 했다. 고환은 이 제안을 받아들이라고 했지만 이주영은 주저했는데 하발악(賀拔岳)은 황위를 차지하는 것을 반대하고 고환을 죽여 자신의 충성을 보이라고 했지만 이도 거부했다. 이주영은 이 후 제국의 여러 반란들을 진압하고 제국을 통합하려 했다. 고환은 이에 갈영(葛榮)과 형고(邢杲)의 반란 진압에 참여했고 양간(羊侃)의 반란 진압에도 참가했다. 이주영은 여러 사령관들을 불러놓고 자기를 대신해 군대를 지휘할 사람이 누구냐고 물었다. 많은 사령관들은 이주영의 조카인 이주조(爾朱兆)가 그러하다고 대답했으나, 이주영은 스스로 자기를 이을 사람은 고환 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주조에게 '너는 고환과 상대가 되지 않으니 언젠가는 너를 죽일 것이다.'라고 했다. 이 후 이주영은 고환을 진주(晉州) 자사로 삼았는데 고환은 훗날을 위해 군자금이 될 부와 군대가 될 병력을 키웠다.

2.4. 이주조에 대항하다

530년 효장제는 이주영이 장차 황위를 차지하리라 생각해 그를 궁으로 불러 죽여버렸다. 이에 이주씨 일족은 이주조와 이주영의 사촌 이주세륭(爾朱世隆)이 리더가 되어 낙양으로 쳐들어갔다. 이주조는 이주영 아내의 조카인 원엽(元曄)을 황제로 삼았다. 이 때 이주조는 고환을 낙양으로 불러 자신을 도우라고 했지만 고환은 지방의 반란을 진압해야 한다는 이유로 가지 않았다. 이주조는 언잖았지만 이 때는 이미 고환의 세력이 커져 만만치 않았다. 이주조는 결국 낙양을 함락시키고 효장제를 사로잡아 그를 자신의 본거지인 진양(晉陽)으로 보냈다. 이 때 고환은 편지를 써서 황제를 죽이지 말라고 했지만 이주조는 답장을 보내지도 않고 효장제를 죽여 버렸다. 그럼에도 고환은 그대로 이주씨 일파에 속해 있었다.

531년 흘두릉보번(紇豆陵步番)이 효장제의 복수를 외치며 반란을 일으키자 고환은 이주조를 도와 반란을 진압하고 그를 처형했다. 이 전투 후에 이주조는 고환을 신뢰해 의형제를 맺었으며 고환에게 이전 갈영의 부대를 맡겼다. 또 고환이 새로운 부대를 형성하고 식량을 구하기 위해 동쪽 태행산으로 가는 것을 허락했다. 신도(信都)에서 이주씨에 대항해 반란을 이으킨 고건(高乾)에 맞섰는데 고건은 고환의 먼 친척뻘이었다. 고건과 이원충(李元忠)은 이주씨 일파는 너무 부패했기 때문에 백성들이 싫어하고 결국은 전복될 것이라고 설득했다. 이 때 이주조는 고환의 부대를 이주조 부대로 옮기려 했는데 결국 고환은 반란을 선언했고 이주조 부대로 옮긴 군인들도 고환을 도와주기로 했다. 한편 이주세륭은 원엽이 지금 황제에게서 너무 먼 친척이라는 이유로 폐위시키고 절민제(節閔帝) 원공(元恭)을 황제로 세웠다. 고환이 처음 반란을 일으켰을 때 절민제를 황제로 인정했으나, 손등의 건의대로 또 다른 황족인 왕랑(元朗)을 황제로 세웠다.

고환 자신은 아주 유능하고 명성이 높은 사령관이었지만 그의 부대는 여전히 약했다. 그리하여 이주씨 일파는 고환의 반란을 그리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으나, 이주세륭만 심각하게 생각했다. 그래서 532년 이주세륭의 형제들인 이주중원(爾朱仲遠), 이주도율(爾朱度律), 이주조까지 모여서 고환을 치려 했다. 하지만 이전부터 이주세륭과 이주조간의 알력다툼이 있었는데 고환은 이를 이용해 이들을 더욱더 이간질 시켰고 결국 이주중원과 이주도율이 철수해 버렸다. 이 후 고환은 이주조의 부대를 격파하자 이주조는 철수했으며 고환은 업성을 점령하고 이를 본부로 삼았다. 마음이 급해진 이주씨 일파는 곧 화해했고 이주조, 이주중원, 이주도율, 이주천광(尔朱天光)이 모두 업성에 모였다. 이주씨 일파의 병력이 훨씬 많았지만 고환은 이 전투에서 승리했다. 이주조는 진양으로 돌아갔고 이주중원 역시 그의 근거지인 동군(東郡)으로 도망갔다. 이주천광과 이주도율은 낙양으로 가려고 했으나, 낙양에는 이미 곡사춘(斛斯椿)이 반란을 일으킨 상태였다. 곡사춘은 이주세륭과 동생 이주언백(爾朱彥伯)을 이미 죽였고 이주천광과 이주도율은 사로잡아 고환에게 보냈다. 이주중원은 동군을 포기하고 양나라로 망명했으며 이제 이주씨 일파 중에서는 이주조만이 남게 되었다. 고환은 원랑과 함게 곡사춘이 통제하고 있는 낙양으로 갔는데 고환은 원랑 역시 너무 먼 황가의 친척이었기 때문에 폐위하고 새로운 황제를 찾았다.

2.5. 실권을 잡다

처음에는 폐위된 절민제를 그대로 황제로 삼으려고 생각했으나, 위난근(魏蘭根)은 절민제는 너무 똑똑했기 때문에 그를 제어하기 힘들다 판단하여 거부했다. 그 후에는 원열(元悅)을 황제로 세울려고 했으나, 그도 최종적으로 탈락되었다. 결국에는 532년 효문제의 손자인 효문제(孝武帝) 원수(元修)를 황제로 삼았다. 고환은 대승상(大丞相)이 되어 실권자가 되었지만 곡사춘이 조정의 많은 지분을 가지고 있었고 효무제도 왕사정(王思政)의 도움을 받았다. 효무제는 치세 초기 모든 일을 고환에게 맡겼다. 고환은 이주영의 본거지인 진양을 자기의 본거지로 사용했는데 효무제에게 자신의 장녀 고씨(高氏)[10]를 황후로 맞이하게 했고 고환은 발해왕에 봉해졌다. 하지만 효무제는 고환이 황위를 노리는 것을 의심하고 고환이 보기에도 효무제 스스로 제국 내 권한을 키우려고 하면서 둘 사이가 멀어졌다.

효무제는 반독립 상태로 있는 군벌 하발악(賀拔岳), 하발승(賀拔勝) 형제에게 희망을 걸었는데 하발악은 제국의 서부를, 하발승은 남부 지방을 통제하고 있었다. 고환은 외견상으로는 효무제에게 공손하게 대했지만 효무제의 힘이 점점 커지는 것을 못마땅해했다. 533년 이주조가 끝에 몰려 결국 수용(秀容)으로 달아났다가 스스로 목을 매 죽었다. 이어 고환은 효무제의 동맹들을 공격했는데 우선 적숭(翟嵩)을 하발악의 장교인 후막진열(侯莫陳悅)에게 보내 하발악을 배반하라고 설득했다. 534년 효무제와 접촉을 한 흘두릉의리(紇豆陵依利)를 공격해 그의 군대를 빼앗으려 했다. 얼마 후 후막진열은 하발악을 암살하긴 했지만 군대를 넘겨받지는 못했다. 이 군대는 이후에 하발악의 부하였던 장안우문태에게 넘어갔는데 우문태는 후막진열의 부대에게 승리하고 후막진열을 처형했다. 이에 효무제는 우문태와 동맹을 맺었고 고환은 우문태와 교섭을 하려 사절을 보냈지만 우문태는 사절을 체포해 효무제에게 보냈다.

2.6. 효무제가 달아나다

534년 효무제는 이제 고환을 치려고 계획했는데 기습을 하기로 하고 거짓으로 고환에게 비밀리에 명령을 내려 우문태와 하발승을 공격할 작정이라고 했다. 하지만 고환은 효무제의 계획을 눈치채고 바로 낙양으로 쳐들어갔다. 왕사정은 제국군으로 고환의 군대를 이기기는 힘들 것이라 판단하여 우문태의 영지인 장안으로 가자고 했다. 곡사춘은 낙양을 지키자고 했지만 하발승의 원군이 도착하지 못했고 우문태의 군대도 오지 않아 결국 떠나기로 결정했다. 고환은 낙양에 들어왔고 효무제는 서쪽으로 가서 우문태의 근거지인 장안에 들어갔다. 효무제는 장안에 도착한 다음 우문태를 재상으로 삼고 제국을 재정립했다. 그러는 동안 고환은 낙양을 점령했고 하발승의 부대를 격파하면서 하발승은 양나라로 도망쳤다.

효무제가 달아난 것을 알게 된 고환은 그 후 효무제에게 편지를 써서 돌아오면 자기는 물러나겠다고 했지만 효무제는 묵묵부답이었다. 이에 고환은 효무제의 오촌 조카인 청하왕 원선견(元善見)을 황제로 삼으니 그가 효정제(孝靜帝)이다. 효정제를 세운 고환은 수도 낙양이 우문태의 세력과 가깝다는 이유로 자신의 근거지인 업성으로 옮겼다. 물론 낙양이 우문태의 세력과 가까운 점도 있지만 아예 황제를 자신의 세력 안에서 감시할려는 것이었다. 이로써 북위는 공식적으로 고환이 옹립한 효정제의 동위, 우문태가 옹립한 효무제의 서위 두 개로 나뉘었다. 물론 서위와 동위 둘 다 자기가 정통이라고 우겼다.

2.7. 서위와 동위의 대결

사실 동위의 지역과 군사력이 서위에 비해 더 좋았기 때문에 고환은 서위를 공격해 제국을 통합하려 했다. 하지만 전투는 쉽게 결정이 나지 않았고 그 동안 서위는 점점 강해졌다. 이전에 고환과 관계를 맺고 있었던 서위의 장군들이 동위로 전향했고 동위는 이 기회에 서위 진영 깊숙히 쳐들어갔다. 하지만 서위는 고환이 황제를 내쫓은 배반자라는 명분을 내세웠고 지역의 백성들은 서위의 군대를 도와주었다. 고환은 선비족과 한족의 융합을 꾀해 선비족들에게는 한족의 농사와 육축을 배우게 했고 한족들에게는 선비족의 군사적 기술을 배우게 했다. 무엇보다 효무제의 탈주는 그에게 치명적인 약점이기 때문에 효정제에 대해서 극진히 대우하며 정통성을 내세웠다. 535년 장안의 효무제는 여자 문제로 우문태와 사이가 벌어졌는데 효무제는 세 명의 사촌과 근친상간 관계였다. 하지만 우문태는 이 관계를 싫어했고 그 중 하나를 죽였다. 효무제는 화를 냈고 자기가 화를 냈다는 것을 인사를 하지 않는다던가, 궁에서 테이블을 쾅 치고 화살이 없느 빈 을 당기는 것으로 표시했다. 결국 우문태는 효무제를 독살했고 그의 사촌 문제(文帝) 원보거(元寶炬)을 황제로 삼았다.

이 소식을 들은 고환은 서위의 황제 시해에 대해 효무제에 대한 공식적인 조문기간을 두려고 했는데 효무제를 이용해 서위의 정당성을 무너뜨리려는 시체팔이였다. 하지만 논의를 한 끝에 그렇게 하지는 않았다. 얼마 후 고환의 후계자인 장남 고징(高澄)이 고환의 첩인 정씨(鄭氏)[11]와 바람이 났고 이것이 발각되었다. 화가 난 고환은 고징을 자택에 감금시키고 어머니 누씨와 만나지도 못하게 햇다. 그 후 고징을 강등시키고 첩 이주씨(爾朱氏)[12]가 낳은 5남 고유(高浟)을 후계자로 삼으려 했다. 하지만 고환의 친구인 사마자여(司馬子如)가 누씨가 예전에 얼마나 고생했는지 생각해보라고 했기에 고징의 시종들을 엄하게 다스리기로 하고 고징의 지위는 그대로 두었다. 이 후 고환의 동생 고침(高琛)[13]은 고환의 또다른 첩 이주씨(爾朱氏)[14]와 놀아나다가 처형되었다.

536년 북방의 유연과 동맹을 맺기 위해 동위의 공주 한 명을 유연의 인 욱구려아나괴에게 주었다. 하지만 욱구려아나괴는 서위의 공주도 첩으로 들였기 때문에 이 동맹은 별 효과가 없었다. 고환은 서위를 깊숙히 공격해서 하주(夏州)를 점령하고 예전에 서위에 잡혔던 그의 동맹 영주(靈州)자사 조니(曹泥)를 구출했다. 게다가 서위의 서부에 자리잡고 있던 서위의 장군들인 만사보(万俟普), 그의 아들 만사수락간(万俟受洛干), 질간보악(叱干寶樂), 파육한상(破六韓常) 등이 고환에게 넘어왔다. 당시 고징이 나이 14세 밖에 되지 않았지만 동위의 재상을 맡기기 위해 업성으로 불러 조정의 실무를 맡아 보게 했다. 537년 고환은 부대를 3개로 나누어 서위를 침공했는데 하나는 자기가 맡고 나머지는 두태(竇泰), 고오조(高敖曹)가 나누어 맡았다. 고환의 생각은 자기가 우문태의 군대를 잡아두면 두태가 서위 깊숙히 들어가는 것이었다. 하지만 우문태는 장안을 버리고 지금의 간쑤성 동부로 철수할 준비를 하는 한편 두태의 부대를 급습했고 두태의 부대 대부분을 살육했다. 대패로 두태는 자살을 명령받았으며 고환과 고오조는 후퇴할 수 밖에 없었다. 서위는 반격을 가해 동위의 영토 일부를 점령했다.

이 후 고환은 관중 지방에 기근이 들었다는 소식을 듣고 다시 서위 원정을 개시해 사원(沙苑)에서 우문태를 대결했다. 여기서 고환은 자기의 군사가 우문태의 군사보다 훨씬 많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곡률강거(斛律羌舉)가 우문태를 피해 장안으로 바로 쳐들어가자는 건의를 무시하고 우문태와의 결전을 준비했다. 고환의 전략은 화전전술이었으나, 우문태의 군대가 죽기 살기로 싸우는 바람에 고환의 부대는 다시 한 번 철수했다. 538년 낙양을 비롯해 남쪽 지방에서 반란이 일어나 서위쪽에 붙자 고환은 후경(侯景)을 보내 남쪽 지방의 반란을 진압했다. 한편 서위의 문제는 유연의 칸인 욱구려아나괴의 딸을 황후로 맞이하자 유연은 동위와의 관계를 끊어 버렸다. 538년 고환은 후경, 고오조의 도움을 받아 낙양을 포위했는데 우문태는 독고신(獨孤信)을 보내 낙양을 지키게 했다. 양측 모두 큰 피해를 입었고 고오조는 이 전투에서 전사했으며 고환도 거의 죽을 뻔했다. 하지만 결국 서위는 낙양을 포기하고 철수했다. 이 때 사원 전투에서 사로 잡혔던 동위의 장수 조청작(趙青雀)이 장안에서 반란을 일으켰는데 장안에 남아있던 서위의 관료들은 황태자 원흠(元欽)을 데리고 장안을 떠났다. 그러나 고환은 이를 도와줄 형편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우문태가 장안으로 들어가 이 반란을 진압했다. 이 후 서위는 남쪽 영토를 조금 회복했으나, 이 후로 몇 년동안 남쪽 국경에서는 작은 전투가 이어졌고 누구에게도 이렇다할 성과는 없었다.

539년 고환은 차녀 태원공주(太原公主)를 효정제에게 주어 황후로 삼았으며 541년 효정제 명의로 칙령을 내려 의복을 정비하고 불공정한 세금을 수정했다. 542년 고환은 다시 한번 서위와의 국경 도시 옥변(玉壁)을 공격해 봤지만 실패했다. 543년이 사고를 한 번 더 쳐서 이를 계기로 동위와 북위가 전쟁까지 일어났다. 고오조의 동생 고중밀(高仲密)은 동위의 관료를 지내고 있었는데 고징의 시종 중 하나인 최섬이라는 자가 고중밀이 자기의 누이와 이혼한 것을 빌리로 고중밀의 약점을 캐려고 하고 있었다. 고중밀은 안그래도 불안해하고 있었는데 고징이 고중밀의 둘째 아내인 이창의(李昌儀)를 겁탈하려 하자 터져 버렸다. 고중밀은 중요한 수비진인 호뢰(虎牢)를 가지고고 서위에 귀순해 버렸고 우문태는 고중밀의 도움을 받아 낙양으로 쳐들어갔다. 비록 우문태는 낙양 근처의 전투에서 패배했으나, 이 전투에서 우문태와 고환은 거의 죽을 뻔 했다. 이 때 서위의 장군이 된 하발승은 고환을 거의 죽일뻔 했는데 동위에 남아있던 하발승의 일족은 모두 처형되었다. 서위군은 물러났고 낙양과 근처의 영토는 다시 동위의 통제하에 들어갔다.

544년 고환에게는 4명의 핵심 참모들이 있었는데 손등(孫騰), 사마자여(司馬子如), 고악(高岳), 그리고 의형제를 맺은 고융지(高隆之)가 있었다. 그러나 고환은 이들이 너무 많은 권한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고 이제 22살이 된 고징에게 더 많은 권한을 넘겨주었다. 고징은 점점 성장했고 곧 이 4명을 넘어서게 되었는데 손등이 고징을 방문했는데 별로 공손하게 대하지 않았고 시종을 시켜 손등을 바닥에 내팽이치고 구타하게 했다. 그리고 고징은 자기의 시종 중 하나인 최섬의 삼촌 최계서를 효정제 옆에 두고 효정제를 감시하게 했다. 고징은 최섬과 송유도에게 많은 권한을 주고 조정내에서 관료들의 부정부패를 감시하게 했다. 최섬과 송유도의 고발로 사마자여가 체포되었고 공직을 잃었으며 원탄(元坦)도 탄핵되었고 영지를 잃었다. 고환도 이는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허락은 해주었다.

545년 첩 이주씨[15]의 형제인 이주문창(爾朱文暢), 첩 정씨의 형제인 정중예(鄭仲禮)가 임주(任冑)와 함께 이주문창을 리더로 삼아 고환을 암살하려고 했다. 하지만 이 음모는 들통났고,공모자들의 가족을 모두 죽였다. 하지만 이주씨와 정씨는 고환의 총애를 받았기 때문에 그들의 형제들은 용서를 받았다. 고환은 이전에 유연과 관계를 끊었지만 서위를 막기 위해서는 유연을 달랠 필요가 있었기 때문에 고환은 고징과 욱구려아나괴의 딸을 결혼시키려 했다. 하지만 욱구려아나괴는 이 제안을 거절했다. 그러자 고징을 비롯해 신하들이 고환보고 직접 결혼하라고 했고 처음에는 반대하다가 결국 욱구려아나괴의 딸 욱구려씨(郁久閭氏)과 결혼했다.[16] 욱구려씨는 연연공주(蠕蠕公主)라 불렸으며[17] 이 결혼을 위해 누씨는 멀리 떨어져 살았으나, 물론 어디까지나 정략결혼이기에 [[[조강지처]]인 누씨와 이혼한 것은 아니었다.

2.8. 죽음

546년 고환은 다시 한번 대규모 서위 원정을 실시했는데 이번에는 서위를 멸망시키려 했다. 고환은 옥변을 포위하고 서위의 구원병이 오면 반격하려 했다. 하지만 서위는 움직이지 않았고 옥변을 지키는 서위의 장군 위효관(韋孝寬)은 고환의 모든 시도를 막아냈다. 동위는 이 전쟁에서 7만의 병사를 잃었으며 고환 스스로도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무너지고 말았다. 547년 고환은 병이 들어 곧 철수했으며 위효관은 자기가 고환을 죽였다고 선언했다. 고환은 이 소문을 잠재우기 위해 스스로 노래를 부르며 그의 군대에게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고환은 이 노래를 부르면서 슬피 울었으며 진양으로 돌아가는 중에도 병이 더욱 깊어졌다. 그래서 고징을 진양으로 불러 마지막으로 여러가지 말을 해주었는데 고징은 낙양을 비롯해 황하 남부 지방을 지키고 있던 후경이 반란을 일으키지나 않을까 두려워 그를 소환했지만 후경은 거절했다. 고환은 고징에게 믿을만한 관료 명단을 내어주었고 모용소종(慕容紹宗)에게 후경을 대적하라고 일러둔 다음 사망했다.

사후 장남 고징이 뒤를 이었으며 그의 차남 고양이 북제를 건국하자 그를 고조(高祖) 신무제(神武帝)로 추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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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testis는 단수, testes는 복수
  • [2] 즉 포유류 이외의 다른 동물의 정소는 고환으로 부르지 않는다. 포유류만 해당. 예를 들어 이리는 정소이지만 고환은 아니다.
  • [3] 쥐젖 항목 하단의 '진짜' 사진에서 쥐의 거대한 알(...)을 볼 수 있다.
  • [4] 이는 이나 신장같은 장기가 외상으로 파열되었을 때에도 마찬가지다.
  • [5] 정확하게는 소의 성기와 불알을 합쳐서 부른다.
  • [6] 고수생(高樹生)이라고 하는데 자세한 것은 항목 참조바람. 훗날 손자 고양에 의해 문목제(文穆帝)로 추존되었다.
  • [7] 이름은 한기희(韓期姬)로 훗날 손자 고양에 의해 문목황후(文穆皇后)로 추존되었다.
  • [8] 이름은 누소군(婁昭君)으로 훗날 아들 고양에 의해 무명황후(武明皇后)로 추존되었다.
  • [9] 나중에 시신은 수습되었다고 한다.
  • [10] 영희황후(永熙皇后)이다.
  • [11] 이름은 정대차(鄭大車)로 훗날 풍익태비(馮翊太妃)로 추존되었다.
  • [12] 이름은 이주영아(爾朱英娥)로 이주영의 딸이었다. 원래 효명제의 후궁이었다가 효명제가 독살당하자 비구니가 되었다가 효장제의 황후가 되었다가 효장제마저 죽자 고환의 측실이 되었다. 효장제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은 이주조에게 죽었고 고환과의 사이에서 5남 고유(高浟)와 13남 고응(高凝) 두 아들을 낳았다. 팽성태비(彭城太妃)로 추존되었으나, 고환 사망 후 그 아들 고양의 수청을 거부하고 죽었다.
  • [13] 조군왕(趙郡王)으로 추증
  • [14] 이주조의 딸로 원래는 원엽의 아내였지만 고환의 첩이 되어 고환의 10남 고개(高湝)를 낳았다.
  • [15] 이주영아
  • [16] 고환 사이에서는 자식이 없었으나, 고환 사후 고징의 첩이 되어 딸 하나를 낳는다.
  • [17] 그의 자매가 서위 문제의 도황후(悼皇后) 욱구려씨인데 540년 출산 도중 문황후(文皇后) 을불씨(乙佛氏)의 혼령을 보고 놀라 난산 끝에 본인과 아이 모두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