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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쿠다카

last modified: 2015-03-08 23:01:18 Contributors

고쿠다카(石高)[1]는 일본 전국시대 직후 토지조사에 의해 정해진 단위이다. 구체적인 단위는 성인 남성이 1년간 먹는 쌀을 생산하는 만큼의 농토를 기준으로 이를 1고쿠다카라 했다. 이 단위는 각 영주들의 세력을 나타내는 데에 중요한 지표로서 활용되었으며 보통 100고쿠다카 당 병력 1명으로 계산했다. 또한 고쿠다카가 5만 석이 넘으면 다이묘(大名)의 칭호를 얻게 되었다. 이 단위는 메이지 유신 이후의 지조개정이 이루어질 때까지 사용되었다.

고쿠다카는 쌀 생산량으로 그 단위를 정하기 때문에 땅의 실제 면적과는 상관없었고, 해당 면적에서 생산되는 쌀의 생산량만큼이 고쿠다카의 단위가 되었다. 일례로 다테 마사무네의 경우 세키가하라 전투가 끝난 이후 62만 석을 하사받았는데 같은 넓이에도 불구하고 이를 토지 개발을 통해 100만 석으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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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石을 세키가 아닌 코쿠로 읽는 것을 의아해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는 단어에서 한자가 다르게 읽힌 것으로 斛(휘 곡, 괵)이라는 글자의 대자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휘란 '곡식양을 측정하는 그릇', 또는 '말 들이'(부피의 최댓값)을 의미한다. 또한 한자로 돌 석자에는 1섬(10말)이라는 뜻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