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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시/역사

last modified: 2015-04-13 20:30:18 Contributors

고양시 행정구역 변천사
고봉현
(高峰縣)
고양현
(高陽縣, 1413)
고양군
(高陽郡, 1471)
고양시
(高陽縣, 1992)
덕양현
(德陽縣)

Contents

1. 삼국시대 ~ 남북국시대
2. 고려
3. 조선
4. 일제강점기
5. 미군정 ~ 대한민국
5.1. 1940년대 ~ 1950년대
5.2. 1960년대 ~ 1980년대
5.3. 1990년대 이후
5.3.1. 시 승격 과정
5.3.2. 일반구 분구
5.3.2.1. 일산시 독립 문제
5.3.3. 기타

1. 삼국시대 ~ 남북국시대

원래 백제의 영토였다. 그러다가 고구려 장수왕 때 남하정책에 의해 북한산주의 영역인 달을성현, 개백현에 속하였다. 6세기 신라 진흥왕의 영토 확장 때 다시 달을성현이 고봉현으로 개칭되어 북한산군에 속하였다.

통일신라 경덕왕 대에 각각 북한산군의 고봉현과 우왕현으로 개편되었다.

2. 고려

초기에 양주의 일부였다가, 현 고양시 일대가 고봉현(高峰縣)[1]과 덕양현(德陽縣)[2][3]으로 분리되었다.

3. 조선

조선 건국 이후 1413년 봉현과 덕현을 통합하여 고양현(高陽縣)이 되었다. 1471년 군으로 승격하였으나, 1504년 연산군이 군을 폐지하고 유행처(임금의 놀이터)로 만들었다가(...) 중종 때인 1506년에 군으로 복구되었다.

1906년 양주군 신혈면(지금의 은평구 진관동, 고양시 지축동 일대)을 편입했다.

4. 일제강점기

1914년 조선총독부의 행정구역 대개편에 따라 경성부(일제강점기 시절의 서울특별시)로부터 8개 면[4], 양주군으로부터 1개 면[5]을 편입해 왔다. 그리고 경성부 은평면 소속이었던 북한리, 효자리를 은근슬쩍 고양군 신도면에 편입시켰다. 이에 따라 벽제에 있었던 고양군청을[6] 경성부 내로 이전하였다. 처음에는 서대문 바깥에 있었으나, 1920년대에 을지로 6가로 이전하였다. 을지로6가 18번지, 현재는 구 고양군청 자리에 중구 구민회관이 들어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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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PG image (Unknown)]

성저십리를 처묵하여 커져버린 고양군
1914년 일제의 행정구역 개편 당시 고양군의 영역. 오늘날 서울의 강북 지역(여의도, 잠실 포함)은 도심부(용산 포함)와 도봉구, 노원구, 중랑구 일부를 제외하고는 전부 고양군의 영역이었다. 고양군의 리즈 시절

이 시절 인구도 전국 최고급이었다. 1930년 인구는 19만 명으로 경성부와 제주도에 이어서 전국 3위, 1935년 인구는 28만 명으로 경성부에 이어서 전국 2위였다.[7]

1936년 일제의 경성부 확장 정책에 따라 용강면(현재의 마포구 공덕동 일대와 여의도 등), 연희면(현재의 서대문구 대부분 및 마포구 홍대 주변), 한지면(현재의 성동구 왕십리 일대와 용산구 한남동 등), 은평면 일부(현재의 종로구 부암동 및 서대문구 홍제동 등), 숭인면 일부(현재의 동대문구 대부분과 성북구 동소문동, 안암동, 돈암동 등)가 경성부에 편입되었다. 이로 인해 뚝도면(현재의 성동구 성수동 일대와 광진구, 중랑구 면목동, 송파구 잠실 일대)이 고양군의 월경지가 되었다.

경성부로 많은 지역이 편입된 이후인 1940년 고양군의 인구는 11만 명으로 줄어들었다.

5.1. 1940년대 ~ 1950년대

8.15광복 후인 1949년 은평면(현재의 은평구 대부분 및 종로구 평창동 등), 숭인면(현재의 강북구 전역과 성북구 나머지 지역), 뚝도면(현재의 광진구, 성동구 성수동, 중랑구 면목동 및 송파구 잠실 등)까지 서울시에 편입되었다. 이로써 고양군 중 성저십리 지역은 북한동, 효자동 지역을 제외하고 다시 원래의 서울로 되돌아갔다.

5.2. 1960년대 ~ 1980년대

1961년 드디어 고양군청이 서울 을지로 6가에서 현재의 원당으로 이전하였다. 옛 성저십리 일대가 1949년에 전부 서울로 재편입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십여 년이 더 지나서야 원래의 고양군 땅으로 되돌아온 것(...).[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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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PG image (Unknown)]

1963년 9월 17일에 고양군 신도면이 서울특별시 도시계획 구역에 편입되었다. 신도·화전지역의 서울 편입 떡밥의 근원이기도 하다. 이 도시계획 구역 중에 서울특별시로 행정편입된 곳은 구파발리, 진관외리, 진관내리(지금의 서울특별시 은평구 진관동).

1967년 신도면 화전리, 덕은리, 향동리, 현천리를 관할로 하여 화전출장소를 설치하였다.

1973년 신도면의 구파발·진관내·진관외리의 3개리가 서울시에 편입되고, 그해 7월 신도면이 신도읍으로 승격하였다. 신도면은 고양군에서 서울과 가장 가까운 지역이었기에 가장 먼저 도시화되었고, 이에 신도면이 가장 먼저 읍으로 승격된 것.

1979년 군청소재지인 원당면이 원당읍으로 승격되었고, 이듬해인 1980년 벽제면이 벽제읍으로, 중면이 일산읍으로 승격되었다.

1985년 지도면이 지도읍으로, 신도읍 화전출장소가 화전읍으로 승격되어, 고양군은 시로 승격되기 전까지 6개 읍(원당읍(군청소재지), 일산읍, 벽제읍, 지도읍, 화전읍, 신도읍)과 1개 면(송포면)을 관할하게 되었다. 보통 1개의 군이 군청소재지이자 중심지 역할을 하는 1개의 읍과 나머지 읍·면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을 고려해 보면, 고양군은 서울 근교라는 특수성으로 인해 읍이 면보다 훨씬 많은 상당히 기형적인 형태의 행정구역을 지닌 군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5.3. 1990년대 이후

5.3.1. 시 승격 과정

1990년대에 들어와 일산읍에 일산신도시, 원당읍, 지도읍 일대에 원당, 화정, 행신지구 개발이 추진되면서 1992년 2월 군 전 지역이 시로 승격하였다. 서울특별시와 바로 인접한 위성도시치고는 시 승격이 상당히 늦은 편이다. 특히 시 승격 20년 만에 인구 100만의 도시로 성장한 것을 생각해 보자. 또한 오늘날 비슷한 인구 규모의 도시인 수원시1949년에, 성남시, 부천시, 안양시1973년에 승격된 것을 생각해 보면...

고양군의 시 승격이 비교적 늦었던 이유는 신도읍, 원당읍, 벽제읍, 일산읍, 지도읍 등 각각의 읍들이 따로따로 성장하는 바람에 '각 읍들을 개별적인 시로 승격시킬 것이냐, 군 전체를 시로 승격할 것이냐'를 두고 당시 내무부(현재의 행정자치부)에서 계속 검토를 해왔기 때문이다. 신도읍은 구파발 일대를 서울에 넘겨준 후 아예 통째로 서울특별시에 편입시키려고 하다가[9] 광명시의 경우[10]처럼 무산되어 1979년에 신도신도시 말고로 승격시키는 계획이 나왔지만, 이 계획도 무산되었다. 그러다가 1985년 신도읍 남쪽의 화전출장소를 화전읍으로 분리시키는 것으로 넘어갔다.(...)[11]

군 전체가 시로 승격된 사례는 고양시가 최초이다. 1995년의 도농통합시 출범에 비해 3년이나 앞선 것이다. 하지만 당시 지방자치법에서는 고양군을 고양시로 승격하기 위한 적절한 법률 조항이 없었다. 1995년 도농복합시 제도가 실시될 때 승격을 했더라면 도농복합시 규정에 의해 군이 통째로 시로 승격이 가능했겠지만, 이 당시의 지방자치법에는 도농복합시 규정이 없었다.[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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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PG image (Unknown)]

고양군 3분할 시승격 검토안. 각 시의 명칭은 가칭이다.[13]

지방자치법에 적절한 조항이 없었기 때문에 내무부는 처음에 고양군을 '원당읍+지도읍', '신도읍+벽제읍+화전읍', '일산읍+송포면'으로 나누어 3개 시로 분할 승격시키는 방안을 잠시 검토했으나, 비효율적이라는 지적이 나와 결국 고양군 전체를 통째로 승격시키는 것으로 결론지었다. # 1995년 도농통합시 제도가 출범하기 이전에는 해당 군의 읍 지역만을 따로따로 시로 승격시키는 시스템이었기 때문. 만약 저 3개시 분할안이 그대로 실시되었다면 각 시의 명칭은 '원릉시'[14], '고양시'[15], '일산시'였을 가능성이 높다.

하여간 적절한 조항은 없었지만 당시의 방자치법 "제7조 (시·읍의 설치기준등) ① 시는 그 대부분이 도시의 형태를 갖추고 인구 5만이상이 되어야 한다." 규정을 을 통째로 로 승격시킬 수 있다고 유권해석을 하여서 고양군 전체를 시로 승격시켰다. 시 승격 이전에 이미 고양군의 각 읍들이 거의 시(市)에 준하는 규모로 성장하여서 이미 고양군의 인구는 당시에 20만 명을 돌파한 상황이었다.(...)[16] 하지만 각 , 들의 면적이 상당히 넓은 편이라 도시화된 지역을 조금만 나가면 논밭이 대부분인 농촌지역이 많았다. 도농복합시 제도가 시행된 이후였다면 용인시 처인구처럼 읍/면으로 묶을 수 있었겠지만, 이 당시에는 도농복합시 제도가 없었기 때문에 농촌 지역도 그냥 전부 행정동 분동 조치를 해버렸다.(...) 그래서 고양시의 농촌지역에서는 가끔 "농어촌 특별혜택을 돌려달라"며 , 으로 되돌려 놓으라는 주장도 한다.[17] 만약 도농복합시 제도 실시 이후 시로 승격되었다면 시가지화가 고도로 진행된 일산읍(구일산 및 일산신도시), 지도읍(능곡, 행신, 화정 일대), 원당읍의 3개 읍만 분동 조치되고, 나머지 신도읍, 화전읍, 벽제읍, 송포면(신도시에 속한 대화동 제외)은 그대로 읍, 면으로 유지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이렇게 군 전체가 시로 승격된 곳이다 보니 수원시를 비롯한 서울 근교의 다른 위성도시들(의정부시, 성남시, 부천시, 안양시, 광명시, 과천시, 구리시, 안산시, 군포시, 의왕시, 시흥시, 하남시)보다 면적이 굉장히 넓다. 상기된 도시들은 기존 군에서 1~2개 읍면만 가지고 시로 승격되었기 때문. 심지어 그 중에서도 덕양구(165.44㎢)는 수원(121.09㎢)나 성남(141.82㎢), 안산(149.1㎢)보다도 더 넓으며, 시흥(166.60㎢)와 맞먹는다.

시 승격 3년 뒤인 1995년에 옛 신도읍, 화전읍 지역이 서울특별시 도시계획 구역에서 해제되어 고양시 도시계획 구역에 속하게 되었다.

5.3.2. 일반구 분구

1996년에는 시 승격 4년만에 인구 50만을 돌파하여 일반구덕양구와 일산구를 설치하였다. 2005년 일산구가 인구 50만을 돌파하여 일산동구일산서구로 분구하였다.

5.3.2.1. 일산시 독립 문제
그런데 일산구와 덕양구로 분구되기 전에 일산시 독립 문제가 대두되었다. 애초에 정부에서 일산신도시 개발을 추진할 때 고양시에서의 '일산시 분리'까지 예정하였고[18], 일산동구청 부지도 일산시청 부지로 잡혀 있었다. 게다가 화정지구에도 별도로 (고양)시청 부지가 계획되면서(이곳이 바로 현재의 덕양구청이다.) 고양시와 일산시의 분리가 실제로 추진되었던 것. #
결국 고양시와 일산시의 분리를 백지화하는 대신에 분구를 하기로 결정하면서 일산신도시의 일산시청 부지는 일산구청(현 일산동구청)으로, 화정지구의 고양시청 부지는 덕양구청으로 사용하게 된 것이다. 고양시청은 원당 주교동에 그대로 남아 현재에 이른다.
(이 문단에서 현 덕양구청 부지가 '고양군 3분할 시승격 계획' 때문에 '원릉시청' 부지로 잡혀 있었다는 내용이 서술되어 있었는데, 3분할 시승격 계획은 위에서 언급했듯이 고양시 승격 이전인 1990년대 초에 잠깐 거론되었다가 바로 폐기되었다. 여기에서는 그 후(고양시 승격 이후) 일산신도시 개발에 따라 고양시와 일산시를 양분하려는 새로운 계획에 따른 것이다.)
물론 지금의 행정구역 개편 방향은 시군구 통폐합이기 때문에 일산시 독립의 가능성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5.3.3. 기타

현재 시청사가 매우 낡고 좁아 덕양구 내곡동(경의선 곡산역 인근) 일대에 신청사 건립이 추진되고는 있으나... 진행 상황은 미비하다. 예산이 문제인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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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지금의 일산서구, 일산동구 일대와 엇비슷하다.
  • [2] 지금의 덕양구 일대와 엇비슷하다. 단 지축동 일대는 여전히 양주 땅이었다가 구한말 1906년에 들어서야 고양군에 편입되었고, 한성부 성저십리 은평방이었던 북한동은 1914년에 고양군 신도면으로 편입되었다.
  • [3] 덕양현은 행주현(幸州縣)이라는 별칭으로도 불렸다. 행주산성의 행주가 바로 이것.
  • [4] 즉, 옛 한성부 성저십리 거의 전역. 여기에는 여의도도 포함된다.
  • [5] 현재의 광진구잠실에 해당된다. 즉 잠실은 원래 양주의 땅이었다.
  • [6] 고양동, 고양향교 등에서 알 수 있듯이, 역사적으로 고양군의 중심지는 벽제 지역이었다.
  • [7] 당시 고양군이었던 지역에 사는 사람들의 인구는 현재 약 450만 명(!)이다.
  • [8] 당시 현재의 고양시청과 그 인근의 땅을 소유하고 있던 박용관이라는 분이 자신의 땅을 선뜻 기증하여 군청사를 이전하게 되었다고 한다. # 또한 본 기사에 따르면, 원래는 중면(훗날의 일산읍)으로 이전하려고 했다고 한다.
  • [9] 신도읍 일대는 1960년대에 서울시의 도시계획구역에 편입되었다. 즉, 장기적으로는 서울 편입을 염두에 두었다는 것. 삼송동, 지축동, 용두동, 화전동 등의 지역번호가 경기도의 031이 아닌 서울의 02인 이유도 이 때문이다.
  • [10] 시 승격이전에 구로공단과 개봉지구 계획과 연계되어 철산동, 광명동의 서울 편입이 검토된 적이 있었다. 자세한 내용은 행정구역 개편/경기권/광명시 서울편입 참조.
  • [11] 여담으로, 1973년 신도읍과 함께 승격된 곳에는 양주군 구리읍도 있었는데, 이쪽은 1986년 구리시로 승격되는 데 성공했다.
  • [12] 고양시에 농촌 지역이 많고, 광역시의 자치구(광역시의 자치구에는 읍·면을 둘수 없다. 읍·면을 둘수 있는 행정단위는 특별자치시, 광역시의 자치군, 도산하의 시군구이다)가 아님에도 읍·면이 하나도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 [13] 참고로 만약 저렇게 되었으면 2014년 기준으로 일산시는 약 53만, 원릉시는 약 33만, 고양시는 약 10만 정도의 도시가 된다. 1990년 기준으로 봤을 땐 고양 91,600명, 원릉 104,155명, 그리고 일산 49,220명.
  • [14] 실제로 당시 원당, 능곡에 살던 주민들은 '원릉시' 승격을 기대하고 있었다고 한다. #
  • [15] 벽제가 역사적으로 고양군의 중심지였으므로(고양동, 고양향교 등) '고양'이란 이름은 여기에서 가져갈 것이다.
  • [16] 1990년 당시 고양군의 읍면별 인구를 보면 원당읍 56,391명, 지도읍 47,764명, 일산읍 40,308명, 신도읍 34,015명, 벽제읍 32,554명, 화전읍 25,031명, 송포면 8,912명 순이었다.
  • [17] 실제로 동이 읍·면으로 환원되는 사례가 드물지만 있다. 1957년 경상북도 달성군, 전라남도 광산군의 몇몇 읍면들이 대구시광주시에 편입되어 동이 되었다가, 1963년 일부가 도로 달성군, 광산군으로 환원되어 면으로 돌아간 사례가 있다. 또한 2014년 경기도 화성시 남양동이 남양읍으로 전환되었다.
  • [18] 이는 분당신도시도 마찬가지여서, 성남시에서의 '분당시 독립'이 예정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