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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last modified: 2015-04-04 15:39:22 Contributo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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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식명칭 주식회사 경향신문사
영문명칭 Kyunghyang Daily News
설립일 1946년 10월 6일
업종명 일간신문과 정기간행물 및 도서의 발간
상장유무 비상장기업
결산월[1] 3월 결산법인
기업규모 대기업
소재지 서울특별시 중구 정동길 3
홈페이지

Contents

1. 개요
2. 역사
2.1. 정동사옥 습격사건
3. 성향
4. 재정상태
5. 논란
5.1. 류근일 영입
5.2. 사장선거 불출마 논란
5.3. 삼성 눈치보기 의혹
5.4. 산케이신문과의 제휴
6. 트리비아
7. 자매지

1. 개요

1946년 10월 6일 경성구천주교회유지재단에서 창간한 신문. 경성구천주교회유지재단은 지금의 천주교 서울대교구 유지재단. 각 교구 소유의 건물이나 기부금 등을 관리하기 위해 있는 재단법인이다. 그냥 서울대교구라고 생각하면 된다. 중간에 천주교 재단에서 분리됐다. 이제 경향신문에서 천주교의 흔적은 이름에 붙은 경향밖에 없다. '경향'이라는 이름은 라틴어의 Urbi et Orbi(바티칸 시와 전 세계에)를 한자 京鄕으로 번역한 것이다. 우리말로 바꾸면 수도와 지방 또는 도시와 시골 정도에 해당하는 뉘앙스인데, 새로 즉위한 교황이 첫 연설을 하면서 꺼내는, 이를테면 "신사 숙녀 여러분"과 비슷한 정도의 의례적인 인삿말이라고 한다.

참고로 비슷한 제호를 가진 경향잡지는 전형적인 천주교 잡지다. 1906년에 서울대교구에서 같은 이름으로 발행했던 신문의 부록으로 시작했지만, 1910년에 신문이 폐간되면서 잡지만 남았다. 혼동하지 말자.

2.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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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창간호 1면 우측에는 이승만 전 대통령의 "축 경향신문 창간", 좌측에는 여운형 선생의 "공명정대"라는 축하휘호가 나란히 실렸던 적이 있다.

창간 초창기 시절엔 그야말로 고난의 행로를 걸었다. 1947년 1월 15일자 1면 칼럼 '여적'(餘滴)에 주한미군과 한국 여성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아 문제를 실은 것이 문제가 되어 필자인 정지용이 미군 당국자와 '백골단' 등 극우 단체로부터 곤욕을 치렀다. 1952년 '발췌개헌안'에 대해 비판적인 보도를 하자 우익폭력단인 '땃벌떼'가 습격하기도 했다.

1957년 7월 2일부터 조간 2면과 석간 4면을 발행하고, 1958년 12월 17일부터 조석간 8면을 발행했다. 1959년 자유당 독재체제가 굳어지자 반독재 노선을 분명히 했으며, 천주교 신자인 장면 부통령 피습사건 이후 비판의 목소리를 더욱 높였다.

이런 자세는 독자들로부터 큰 호응을 받아 당시 발행부수 20만 부를 기록했다. 1959년 2월 4일 '여적'란에 실린 당시 국회의원 주요한의 "현 한국정세는 공명선거가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무력에 의한 혁명이 일어날 전조를 보이고 있다"라는 내용이 미군정 법령 88호(신문과 정기간행물 허가에 관한 조항, 1961. 12. 30 폐기)에 위반된다 하여 필자와 당시 사장 한창우가 2월 28일 기소되었고, 신문은 4월 30일 강제 폐간당했다.

이러한 조치에 불복하고 정부를 상대로 법정투쟁을 벌여 승소했으나, 정부는 폐간조치를 무기한 발행정지처분으로 바꾸어 발행을 막았다가 4.19 혁명 이후 복간되었다.

박정희 정권 시절에는 더욱더 고난의 행로를 걷게 되었다. 비판적 논조가 거슬린다며, 경향신문 주요 인사 교체 - 주가와 판권매각으로 수장학회와 여러 대기업의 소유가 되었으며 당시 상황이 이 기사에 자세히 나온다. 기아자동차에서 발행한 회사의 역사를 다룬 책에 나오는 한 때 기아가 경향신문을 소유했다는 기록은 이것과 연관된 것. 어찌보면 기아의 흑역사라 할 수 있다.

1974년에는 강제적으로 MBC와 합쳐져 두 언론이 함께 정권의 시녀(...) 역할을 한다. 안습 현재의 경향신문 본사는 지어질 당시에는 MBC와 같이 사용했다.@ 건물 위쪽 창문을 잘 보면 TV 브라운관 같이 생긴 것이 방송을 상징하는 것이다. 건축가김수근. 덧붙여 경향신문은 MBC가 여의도로 이전하기 전까진 1층과 지하 1층, 문화체육관(후에 팝콘하우스로 바뀜. 지금은 헐리고 아파트가 들어섬.)을 사용했었다. 현재도 정수장학회가 경향신문 사옥에 입주해있다. 이 경향신문 사옥 건물의 소유주는 경향신문이지만 토지소유주는 정수장학회이다. # 경향신문은 정수장학회에 임대료를 내는 처지.

또 1980년대 김대중 전 대통령이 옥중 생활을 하고 있을때는 5공의 지시에 따라 '김대중의 사악한 마키아벨리즘과 국가 전복 음모'를 주요 사설에 싣기도 했다. 이런 사건 덕분에 6월 항쟁 와중에는 군부독재정권의 확성기로 매도당해 시위대가 경향신문을 불태우는 흑역사를 겪기도 했다.

이후 1990년 한화그룹에 인수되었으나, 1998년 다시 한화그룹이 판권을 포기함으로서 마침내 한겨레와 마찬가지로 자유로운 신문이 되었다. 그대신 한화가 분리하면서 경향신문의 부채를 떠넘겼기 때문에 가난해졌다.(...) 국내 언론사 중 드물게 사원주주제를 시행하고 있다. 경향 이외에 사원주주제를 시행하고 있는 신문은 한겨레신문, 내일신문, 서울신문 등이 있다. 단, 서울은 공기업 지분이 사원주주의 두배가 넘는다.

2.1. 정동사옥 습격사건


2010년에 민주노총을 경향신문 사옥 세입자로 맞이했다. 2013년 12월 철도파업의 여파로 서울이 온통 난리였던 분위기 속에 민노총의 산하 지부인 철도노조의 지도부가 사무실에 숨어있다는 얘기가 나오는 바람에 2013년 12월 22일 경찰이 철도노조 지도부를 체포하기 위해 강제진입을 시도하면서 조용하던 일요일 아침 사옥이 탈탈 털렸다.(...)

경향신문이 설립되고 최초의 일이며, 정동사옥이 열린 뒤 언론사가 공권력에 털린 최초의 사례로 남게 되었다. 사옥 정문이 완전히 박살나고 사무실로 통하는 계단과 문짝, 집기가 온통 난장판이 되었다. 참고로 신문사들은 관례적으로 일주일 중 토요일 하루를 쉰다고 한다. 일요일에는 신문을 발행하지 않기 때문. 하지만 일요일은 월요일자 신문을 찍어야하기 때문에 일요일은 근무한다. 즉, 신문사 직원들이 근무 중일때 사옥이 털렸다는 소리.(...) 피해상황.

근데 정작 털어놓고 보니까 철도노조 지도부는 이미 오전 중에 빠져나간 상태였고(...) 경찰의 삽질은 대대적으로 비웃음을 당했다. 빠져나간 철도노조는 조계사에 피신했다고. 또 이와중에 일부 의경이 사무실에 비치된 커피 맥심을 훔치는(...) 촌극을 벌여 경찰이 잡은건 맥심밖에 없었다는 비아냥을 들었다.# 훔치고 싶은 그맛 맥심

그리고 경향신문은 사건이 터진 다음날부터 며칠동안 계속 정부를 비판하는 기사를 연속적으로 내보냈다. 사건 다음날인 12월 23일자 사설. 경향신문은 해당 사설 <경향신문사 난입은 반언론적 폭거다>를 통해서도 "언론자유와 민주주의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라며 "이번 반언론적 폭거가 어떻게 기획ㆍ실행됐는지 진상을 규명하고 책임자를 엄중 처벌할 것을 정부에 강력히 촉구한다"고 밝혔다. 사옥 침탈에 분노한 경향.

3. 성향

근본 성향은 한겨레, 오마이뉴스와 비교적 비슷하지만 세부 성향을 따지면 좀 다르다. 오마이뉴스와 한겨레보다는 온건한 진보노선을 띄고 있다. 옛날 TV방송에선 중도신문이라고 대놓고 광고한 적도 있다. 하지만 따지고보면 강경진보 vs 온건진보 구도로 보는 것도 잘못된 구분이며, 경향도 사안에 따라 강경할 땐 강경하고, 다른 신문도 온건할 땐 온건하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민족주의, 대북정책, NL에 대한 입장이 다르다고 봐야한다. 특히 경향은 북의 인권, 3대세습, 핵개발, 선군정치 등에 대해서 끊임없이 비판하며 2010년 김정은이 차기 지도자로 확정받았을때 민노당에서 세습을 우회적으로 인정하는 듯한 입장을 표명하자, 논설위원인 이대근이 민노당 NL계와 통일운동단체들을 공격하면서 북에 대한 태도를 명확히 하라고 윽박지르기도 했다. 친노에 대해서도 좌측 깜빡이 켜고 우회전한다고 날이 선 비판을 자주 가한다.

이 때문에 경향신문 독자들 중에선 한경오로 묶어 부르는 걸 싫어하는 사람도 많다. 반대로 조중동 독자를 비롯한 보수 진영에서는 경향신문을 진보신문 중 가장 높게 평가하기도 한다.

보수 성향의 논객들이 자주 글을 올리는 것도 특징이다. 중앙대 이상돈 교수, 전원책 변호사 등이 그들이며, '한국, 소통합시다'(2009년), '이상돈, 김호기의 대화'(2010년) 등의 시리즈를 통해 PD성향 인사들과 보수성향 인사들의 대담록을 시리즈로 연재하기도 했다.

4. 재정상태

1996년 이후부터 재정난에 허덕이고 있었으나(사실 한화그룹이 경향신문을 독립시킨 것도 이 때문), 2008년 촛불집회 이후 판매부수가 대폭 늘었다고 한다. 하지만 광고 단가가 올라갈만큼 판매부수가 늘어난건 아니어서 오히려 경영상황이 더 어려워지기도 했다. 2009년 회계연도 기준 누적 부채액수는 2,000억원에 달했다. 덕분에 2천년대엔 사장이 교체되는게 다반사였다.

하지만 2009년 이후 반전되어, 3년 연속 흑자를 내는 등 그나마 숨통은 트였다고 한다. 사장 인터뷰내용.

5. 논란

5.1. 류근일 영입

2011년 8월, 보수주의자들의 의견을 듣는다는 취지에서 전 조선일보 편집국장 근일을 객원논설위원으로 영입했다. 그러나 상술한 이상돈 같은 경우는 친여 성향이기는 해도 PD계열과는 대화가 통하는 인물인 것과 대조적으로, 류근일은 뉴라이트의 모체인 자유주의연대의 고문이자 조선일보 퇴직 이후에도 월간조선, 뉴데일리 등에서 '한국의 진보라는 사람들은 볼셰비키, JMS 추종자보다 더 나쁘다', '참여정부는 민주당과 북한 노동당의 연합정권이었다' 등의 병맛 넘치는 글로 진보성향 독자들의 빈축을 샀던 인물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는 경향신문 칼럼에서 '안철수는 좌파의 숙주', '2012년 대선은 김정일 추종세력과 독재추종세력자유민주주의 세력의 싸움' 등 매카시즘성 글을 연일 휘갈겼다. 그러나 이대근 편집국장은 미디어오늘과의 인터뷰에서 '좌우' 편가르는 패거리주의가 더 나쁘다며 보수와의 대화를 중단하지 않겠다고 했다. 이런 식의 접근은 서양진보매체의 대표격인 뉴욕 타임스에서도 나타난다. 독자들에게 다양한 의견을 들을 기회를 제공하기 위한 것.

5.2. 사장선거 불출마 논란

경향은 사원주주제로 사원들이 사장을 직접 선출한다.오오 2011년 5월, 사장선거에 강병국 변호사가 출마하려고 했다. 이 사람은 경향신문 노조위원장이었으나, 한화 계열사 시절 해직된 뒤 사법고시에 패스해 경향신문 측 변호사로 활동했다고 한다. 강병국 변호사가 사장 선거에 출마하려고 하자 송영승 사장의 측근인 이대근 편집국장이 강병국 변호사를 찾아가 조직의 안정성을 해친다며 불출마를 요구했고, 결국 강병국 변호사의 불출마로 송영승 사장이 연임에 성공해 말썽을 빚었다.

이 부분은 위에서 언급된 비판 지점들과 연계되는 복잡한 내부사정이 빚어낸 결과다. 참여정부에 대해 비판적 입장을 보였던 최장집 교수와 입장을 같이 하는 이대근 편집국장과 친노 성향이 강한 부장들 사이에서 알력이 있었으며, 강병국 변호사는 이대근 국장에게 맞서기 위한 대립교황으로 옹립된 것이다. 이런 이대근 국장의 행동은 분명 문제가 있었고 결국 경고조치를 받았지만, PD 성향이 강한 평기자들이 자보를 붙이며 국장의 손을 들어주어 일단락되었다.

한가지 특기할만한 점은 이 사태에 대해서 미디어오늘이 앞장서서 이 사실을 보도했다는 점이다. 미디어오늘은 이전에 북한의 3대 세습 문제를 적극적으로 비판하지 않는다며 이대근 국장에게 "미디어 과거인지, 미디어 김정일인지"라고 까인 적이 있다. 이후 이 국장은 이를 두고 "트위터의 특성을 잘 모른 상태에서 한 실언이었다"고 밝혔지만 "이 문제는 아직도 유효하고 극복해야 할 과제로 남아 있는 것 아닌가 싶다"고 했다. 근데 미디어 오늘은 이전에도 간간히 언론사 내부의 일이나 복지수준에 대해서도 기사로 내곤 했기 때문에 딱히 특별한 사실은 아니다.

5.3. 삼성 눈치보기 의혹

2010년 삼성을 비판하는 내용의 칼럼을 편집부에서 내렸다가, 해당 저자가 프레시안을 통해 폭로하자 내부 격론 후 대기업 보도도 엄정히 하겠다는 결의를 다졌다. 삼성이 경향신문 광고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다보니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충돌이 오는듯. 여기 언급된 것만 봐도 경영이 꽤 어려워보인다.

그런데 다시 2014년 광고국에서 송경동 시인의 삼성비판 칼럼 중 일부내용을 삭제해 논란이 되었다.# 사내에서도 논란이 있었다고 한다.#

5.4. 산케이신문과의 제휴

산케이신문의 성향 때문에 제휴했다고 까인다. 다만 이는 군부독재 시절 경향신문이 친정부 성향이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사무소를 임대하는 수준에 그치는 듯.

6. 트리비아

만평으로 유명한 '장도리'와 '그림마당'이 연재되고 있다. 둘다 재미와 풍자, 간혹 씁쓸함도 담고 있다.

2013년 11월 3일부터 팟캐스트 방송을 시작했다.

2010년 5월, 위클리경향 875호에 용자 기사가 실린 바 있다. 앙? 담당기자가 원래 덕후 성향이 있다. 그리고 트윗 봇에 관한 기사를 쓸 때 엔하위키(현 리그베다 위키) 트위터 봇/목록 항목을 인용하기도 했다. 자세한 내용은 언더그라운드.넷 항목 참조.

간도 되찾기 운동에 참여하기도 했다. 그러나 간도는 독도와는 달리 역사적으로 한국 영토로 보기 어려운 지역이기 때문에 이 운동에 참여하는것에 대한 비판이 있다.

2014년 3월 경향신문과 비슷한 이름을 써서 이익을 챙겼다고 판단한 경향일보에 상표권등침해금지가처분 신청을 제기했다. 그리고 동년 8월 경향일보와의 소송에서 승소했다.

경향신문이 운영하는 페이스북에서 기사를 공유할 때마다 기사에 절묘하게 들어맞는 약빤 짤방을 매치해 호응을 얻고 있다. 사례. 또한 페이스북 관리자가 댓글을 달아주기도 한다.

7. 자매지


2011년 기준으로 자매지인 레이디경향이 42,100부 수준이었다. 여성지 가운데 여성조선(44,600부)과 비슷한 수준이다. 2012년엔 여성종합지 가운데 1위를 했다고 한다.

주간경향의 경우 한동안 뉴스메이커, 위클리경향 등 제호를 바꿔가며 죽을 쒔지만, 현재는 2만부를 조금 넘기는 수준으로 뉴스위크 한국판과 비슷한 수준이다. 주간지 시장은 대체로 진보 매체가 강한 편이지만 한겨레21이나 시사in에 비하면 부수가 낮은 편이다.

스포츠신문인 스포츠경향의 경우 한동안 스포츠칸이란 제호로 나갔다가 현재는 스포츠경향. 부수는 2010년 기준으로 105,307부 수준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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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이 칸이 없으면 다 12월 결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