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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부선

last modified: 2018-06-04 08:38:43 Contributors

혹시 경부고속도로를 찾아오셨나요?

京釜線 / Gyeongbu Line
대한민국 철도의 대동맥

Contents

1. 개요
2. 역사
3. 영향
4. 역할
5. 구간
5.1. 선형
6. 역 목록
6.1. 경부선(전철)
7. 여담


1. 개요


GyeongbuSeon_.jpg
[JPG image (664.72 KB)]

서울특별시서울역부산광역시부산역을 연결하는 총 길이 441.7킬로미터의 철도 노선. 한국 제1의 종관 철도. 대한민국 철도의 대동맥이며 이와 견주어 경부고속도로도로교통의 대동맥 역할을 한다.


우렁차게 토하는 기적소리에
남대문을 등지고 떠나 나가서
빨리 부는 바람의 형세 같으니
날개 가진 새라도 못따르겠네

늙은이와 젊은이 섞여 앉았고
우리네와 외국인 같이 탔으나
내외친소 다같이 익히 지내니
조그마한 딴 세상 절로 이뤘네
-경부철도가 최남선

2. 역사

1901년6월 경부철도주식회사 설립
8월 20일 서울 영등포에서 북부기공식
8월 21일 착공
9월 21일 부산 초량에서 남부기공식
1905년서울역~초량역구간 개통
1908년부산역(초창기 위치)까지 개통
경의선과 직통운행이 이루어져 부산~신의주 특급열차 '융희호'가 운행
1911년11월 1일부터 만주까지 직통 급행 운행, 일본-조선-만주를 잇는 국제선의 기능을 하게 됨
1939년일본의 대륙 침략을 원활하게 할 목적으로 복선화
1974년광역철도 운행 겨획에 따라 서울~수원구간의 전철화
서울역~영등포역 구간의 복복선화
1981년영등포역~수원역 구간의 복복선화
1991년영등포역~구로역 구간의 3복선화
1996년용산역~영등포역 구간의 3복선화
2003년수원역~병점역 구간의 전철·복복선화
2004년KTX 운행 개시
대전조차장~옥천 구간,신동~부산 구간의 전철화
2005년병점~천안 구간의 전철·복복선화,천안~조치원 구간의 전철화
2006년조치원~대전조차장,옥천~신동 구간의 전철화
부설된지 98년 만에 완전 전철화

3. 영향

경부선의 노선이 오늘날과 같이 되면서 김천시구미시, 대전광역시가 급부상하였다. 그리고 충주, 상주, 공주가 망했다 서울특별시를 중심으로 한 X자형 철도망의 시발점이며, 동시에 조선 이래로 가장 큰 교통로였던 전통적 호남대로의 주요 거점이던 공주, 영남대로의 주축이었던 충주가 쇠퇴하고, 호남대로에서도 한참 비켜나있던 대전광역시가 급성장하는 계기가 되었다. '대전'은 원래 충청남도 회덕군 소속의 리(里)의 이름으로 대전(大田) 자체가 한자 뜻 그대로 큰 논밭이라는 뜻이다. 지금은 대전보다 세가 약한 충주와 상주 등은, 도 이름의 유래가 된 고을로 조선 시대에는 지금의 대전 이상의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대전역이 설치된 이후 전통적인 우세가 바뀌어버렸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대전은 기존의 회덕군이란 군명을 대전군으로 개칭할 정도로 급성장하게 된다. 만약 처음 계획대로 경부선이 만들어졌다면 아마 지금쯤 공주광역시가, 전통적인 길을 따라 경부선이 지어졌다면 충주가 광역시 또는 청주 이상의 위상을 가지고 있었거나, 상주가 (지금은 구미에게 넘겨준) 경북 서부권의 맹주 자리를 유지했을 가능성이 크다.

4. 역할

한국 여객 수송 1위의 노선으로 주요 대도시와 공업 단지는 경부선을 따라 자리잡고 있다. 심지어는 다른 모든 철도 노선의 운행 편수를 합쳐도 경부선의 운행 편수를 못 따라온다.그저 문제는 그 운행편수의 대다수가 KTX라는 것 뿐

5. 구간



원래 서울특별시부산광역시를 연결하는 최단 루트는 서울 - 이천 - 충주 - 상주 - 대구 - 부산 의 영남대로 또는 서울 - 이천 - 충주 - 점촌 - 안동 - 의성 - 대구 - 부산 루트이나 조령의 난이도가 보통이 아니다보니 이쪽은 1930년대 들어서야 이른바 경부신선이라는 이름으로 사업이 추진되었다. 경부선 건설에 대해 한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경부선 건설의 주체는 일본 정부가 아닌 경부철도주식회사라는 사기업이며 당연히 이윤을 추구할 수밖에 없으니 허허벌판에 철도 건설하고 싶을 리가 없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경부선 구상 초창기에는 어떻게든 청주, 상주 같은 전통 대도시들을 경유지에 추가해보려고 애를 썼다. 이후 경부선 노선의 결정과정을 시간 순서에 따라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 1894년 추풍령 횡단지점 확정
  • 1899년 경인선에서 분기하는 노선으로 결정[1]
  • 1901년 전의-영동 구간을 전의-공주-노성-진산-금산-영동으로, 대구-삼랑진 구간을 대구-현풍-창녕-영산-삼랑진 확정
  • 1903년 전의-영동 구간을 전의-조치원-회덕-영동으로, 대구-삼랑진 구간을 대구-경산-청도-밀양-삼랑진으로 변경

지도를 놓고 보면 전설의 공주경유안은 그야말로 한반도 남부를 반바퀴 빙 도는 노선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는 호남지방을 경부선의 직접적인 영향권에 두는 것과 동시에 당시 한국 정부에서 추진하던 서울-목포간 철도나 기타 한국 및 외국자본으로 추가 건설하는 철도가 경부선의 지선 형태가 되도록 강요하는 데 목적이 있었다.[2]

전의-영동 구간이 공주가 아닌 회덕으로 변경된 것을 두고 공주에서 철도 부설을 반대했기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제법 그럴싸하게 돌았으나, 정작 국채보상운동의 진원지였을 정도로 항일구국 분위기가 팽배했던 대구에서조차 일본은 아무 문제 없이 철도를 놓았다. 가장 크게 영향을 미친 것은 러일전쟁을 앞둔 일본 군부의 압력으로, 한반도를 관통해 만주까지 병력을 실어날라야 하는 일본군의 입장에서 전라도[3]와 충청도를 뺑뺑 돌아 서울까지 가는 철도가 세월아네월아 하며 건설되는 꼴을 속편하게 지켜볼 수 있을 리가 만무했다. 결국 충청도를 우회하는 공주경유도, 소백산맥을 관통해야 하는 청주경유도 모두 무산되었고, 최대한 지형장애물을 피하는 전의-조치원-회덕-영동으로 노선이 급하게 변경되었다. 마찬가지로 대구-삼랑진 구간도 소하천이 많아 교량 건설이 과다하게 요구되는 기존 노선 대신 밀양강을 따라가는 현 노선으로 바뀌었다. 그 결과 경부축선의 전통적인 주요도시들 중 청주, 상주 등에 철도가 들어가지 않게 되어 한반도의 국토구조가 상당히 뒤틀리게 되었다.이 때 청주로 들어갔으면 그런 전투종족이 생겨나진 않았을텐데.... 만약 들어갔다면 청주가 광역시가 된다면 이상할리가 없다(물론 진천이 천안을 누르고 땅값이 비쌀거 같은 느낌이..)

5.1. 선형

경부선의 선형은 다른 주요 간선들에 비해 상당히 좋지 못한 상태이다. 호남 및 전라, 장항선 또는 경춘선이나 심지어 중앙선(복선전철화 된 곳, 서원주역이북, 제천역~도담역간 등등 한정) 등 수도권과 직결된 노선의 경우 열차가 130km/h 이상 달리는 구간이 많지만, 경부선은 그럴 수 있는 곳이 적다.

수도권 전철와 일반열차가 운행되는 서울-대전 간은 선형이 좋아 130~140km/h는 충분히 달리지만, 대전 이남 구간은 매우 좋지 않은 게 현실이다. 특히 대전~대구 구간은 온갖 드리프트들이 넘쳐난다. 해당 구간 이남의 대부분 구간들도 마찬가지며 사실 경부선의 절대다수의 구간이 다 비슷비슷하다. 대부분의 구간이 600R(곡선반경 600m. 제한속도 110km/h) 구간이어서 110km/h를 넘기기 힘들며, 심지어는 400R(곡선반경 400m. 제한속도는 90km/h) 구간도 있다. 그 악명 높은 호남선개태사 드리프트와 맞먹는 속도로, 호남선 익산 이남 구간이나 전라선 등에 비견하면 기어가는 수준이다. 다만 호남선, 전라선의 경우 경부고속선과 같은 고속전용선을 건설하는 대신 기존선에 KTX를 일반열차와 병행 운영하려다 보니 복선전철화 및 선형 개량이 반드시 필요했던 사정이 있다. 해당 노선들은 KTX 운영이전에는 아예 복선화도 되지 않았을만큼 선로 사정이 경부선보다 훨씬 열악했다.[4]

6. 역 목록

6.1. 경부선(전철)

수도권 전철 1호선
경원선 종로선 경부선 경인선 병점기지선 경부고속선 장항선
소요산역
~
청량리역
서울역
~
청량리역
서울역
~
천안역
구로역
~
인천역
병점역
~
서동탄역
금천구청역
~
광명역
천안역
~
신창역
42.9km
(21.36%)
7.8km
(3.89%)
96.6km
(48.16%)
27.0km
(13.46%)
2.2km
(1.10%)
4.7km
(2.34%)
19.4km
(9.67%)

위의 경부선 중에서도 수도권 전철이 개통된 부분의 전철 노선 이름. 노선 색상은 남색. 현재 분류상으로는 수도권 전철 1호선의 일부. 현재 수도권 전철이 다니는 구간은 천안까지이며 이 이남은 일반열차만 운행한다.
수도권 전철의 일부 열차는 여기서부터는 천안직결선을 통해 장항선을 따라 신창까지 운행한다.

1974년 8월 15일 수원역을 기점으로 통근전철이 운행되기 시작하였으며, 2003년 병점역, 2005년 천안역, 2008년 장항선 신창역까지 연장되었다. 구로역에서 인천에서 출발한 경인선 통근전철과 합류한다.

운행 계통 등의 자세한 정보는 수도권 전철 1호선을 참고할 것.

7. 여담



경부철도가라는 최남선이 쓴 창가가 있다. 당시 일본에서 유행하던 철도가에서 영감을 얻은것으로 추정된다

구한말 무렵 경부선 안양 서리재고개 인근에서 일본의 초대 총리였으며 이후 안중근 의사의 의거로 사망한 이토 히로부미가 애국지사 원태우에 의해 암살당할뻔 하였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토 히로부미의 주치의가 재빠른 응급처치를 진행해 그는 무사히 살아남았다. 당시 이토 히로부미는 수원에서 사냥을 마친 후 열차를 타고 서울로 이동 중 봉변을 당했다고 한다. 지금도 안양역에 가면 그분의 기념판를 볼 수 있다. 사실 잘 안 보이는 위치에 있긴 하지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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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경부철도주식회사는 경인선 부설권을 매입한 자본이 주축이 되어있었다. 이후 경인철도주식회사는 경부철도에 흡수합병된다.
  • [2] 바꿔 말하자면 흔히 이야기되는 충주경유안은 당시로서는 거의 가능성 없는 이야기로 치부되었다는 반증이라고도 할 수 있다.
  • [3] 당시 진산은 전라도였다.
  • [4] 경부선이 선형 개량이 안된 주요 이유는 경부고속선 건설 때문이었다. 경부고속철도 초기 계획시 두가지 안이 제시가 됐는데, 그게 기존 경부선의 선형개량과 별도 고속전용선 신설이었다. 여기서 별도 고속전용선 신설, 즉 지금의 경부고속선 건설안이 경부기존선 고속화안을 누르고 채택되면서 경부선 선형개량은 뒷전으로 밀려 버렸던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