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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고등학교 야구부

last modified: 2015-04-08 23:40:02 Contributo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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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PG image (Unknown)]
경남고등학교 야구부
창단 1945년
소속 리그 부산권
감독 전광열
연고구단 롯데 자이언츠
우승 기록[1] 17회

대회 우승 준우승 4강
대통령배 - 5회(1973, 84, 86, 92, 98) 3회(1972, 78, 89)
청룡기9회(1947, 48, 73, 76, 90, 98, 2006, 07, 10) 6회(1946, 49, 71, 87, 2002, 08) 3회(1979, 93, 97)
황금사자기6회(1947, 48, 49, 55, 67, 74) 6회(1954, 58, 63, 82, 84, 87) 8회(1972, 73, 78, 89, 92, 97, 2009, 10)
봉황대기2회(1998, 2003) 1회(1992) 3회(1985, 95, 99)
협회장기 - - 1회(2014)

1947년, 1948년 청룡기 전국고교야구대회
부산상업중등학교 경남중등학교 광주서중등학교
1947년, 1948년, 1949년 황금사자기 전국고교야구대회
대회창설 경남중등학교 인천고등학교[2]
1955년 황금사자기 전국고교야구대회
인천고등학교 경남고등학교 동산고등학교[3]
1967년 황금사자기 전국고교야구대회
선린상업고등학교 경남고등학교 경북고등학교
1973년 청룡기 전국고교야구대회
중앙고등학교 경남고등학교 경북고등학교
1974년 황금사자기 전국고교야구대회
대구상업고등학교 경남고등학교 부산상업고등학교
1976년 청룡기 전국고교야구대회
경북고등학교 경남고등학교 대구상업고등학교
1990년 청룡기 전국고교야구대회
동대문상업고등학교 경남고등학교 경남상업고등학교
1998년 청룡기 전국고교야구대회
신일고등학교 경남고등학교 대구상업고등학교
1998년 봉황대기 전국고교야구대회
신일고등학교 경남고등학교 북일고등학교
2003년 청룡기 전국고교야구대회
북일고등학교 경남고등학교 동성고등학교
2006년, 2007년 청룡기 전국고교야구대회
동산고등학교 경남고등학교 대구고등학교
2010년 청룡기 전국고교야구대회
신일고등학교 경남고등학교 상원고등학교



Contents

1. 소개
2. 연혁
2.1. 태양을 던지는 남자, 장태영
2.2. 과도기
2.3. 슈퍼스타 최동원의 등장
2.4. 영광의 지속
2.5. 송승준의 시대
2.6. 2000년대
3. 야구대제전
3.1. 1회 야구대제전
3.2. 2회 야구대제전
3.3. 3회 야구대제전
3.4. 2013년 야구대제전
3.5. 2014년 야구대제전
4. 부산고등학교와의 라이벌리
5. 출신 선수


1. 소개

1967년 제 21회 황금사자기 고교야구대회에서 우승당시. 사진에서 등번호 3번은 허구연이다.

청룡기 최다 우승팀. 황금사자기 유일한 3연패를 달성한 팀. 그리고 경북고에 이어 전국대회 우승 횟수 역대 2위. 부산 야구의 자존심으로 군림하며 꾸준히 한 시대를 지배한 팀. 대통령배 한정 콩라인

2. 연혁

2.1. 태양을 던지는 남자, 장태영

1947년 청룡기 우승후 기념사진

1945년에 창단한 이후 1946년 청룡기 1회 대회 결승전에 진출하였지만, 아쉽게도 이 해는 부산상업중학에게 패하면서 우승과는 인연을 맺지 못했다. 그러나 이듬해인 1947년에는 2회 청룡기와 1회 황금사장기를 동시에 우승했고 1948년에는 3회 청룡기와 2회 황금사자기를 동시에 우승, 1949년에는 4회 청룡기, 3회 황금사자기, 1회 화랑대기를 우승하며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하기도 했다. 창단이후 4년간 우승한 횟수는 무려 7회에 달했다.

왼쪽부터 순서대로 김정환, 박현식, 장태영, 김양중[4]

이 우승을 일군 사람이 해방 이후 고교야구를 풍미한 전설적인 대투수 장태영. 1946년 중학교 3학년[5]이던 시절 유격수로 첫 전국대회 결승을 밟은 이후, 1947년부터 본격적으로 투수로 활동하며, 투수로 던지던 내내 단 한 번의 패배를 제외하고는 모든 경기에서 승리하며, 동 시대 무수한 라이벌들의 피눈물을 만들어 낸 원조 괴물투수의 활약 속에 초창기 고교야구 무대에서 경남고는 완벽한 강호로 군림했다. 그들이 진 단 한 경기는 장태영이 졌던 단 한 경기로 광주서중의 김양중과의 처절한 연장 12회 완투대결에서 실책이 빌미가 되어 결승점을 내준 것 하나 뿐이었다.

2.2. 과도기

경남고등학교 시절 허구연. 참고로 60년대라 경남고 건물이 목조 건축물이었다.

이후 경남고는 1955년 황금사자기 우승 외에는 한동안 서울에서 열리는 메이저 대회 우승과는 살짝 거리가 멀었지만, 1967년 허구연을 앞세워 황금사자기 우승을 차지하면서 오랜 우승의 갈증을 해결했다.

1973년 경남고등학교 야구부.

그리고 1973년 청룡기에서 김용희와 천창호의 활약 속에 다시 우승을 차지했고, 1974년에는 다시 차동열을 앞세워 황금사자기 우승에 성공하면서 완벽하게 우승 포지션으로 돌아왔다. 비단 우승만이 아니라 경남고는 꾸준히 대표 선수를 배출하고 있었고, 8강 이상의 성적은 꾸준하게 기록하면서 강호로 인정받았다.

2.3. 슈퍼스타 최동원의 등장

최동원의 역동적인 투구폼

1976년 31회 청룡기 우승 깃발을 조선일보 사장인 방우영에게 받고 있는 최동원
1975년 이미 초고교급 강속구 투수로 불리던 최동원은 동시대 동갑내기 개띠 3총사로 불린 김시진, 김용남을 압도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1976년 고교야구에서 센세이션을 불러 일으켰다. 청룡기 결승에서 결코 만만치 않은 전력을 구축한 군산상고를 상대로 승자 결승에서 삼진 20개를 잡으면서 그야말로 군산상고 타선을 농락한 것. 최종 결승에서 다시 올라온 군산상고 상대로 다시 삼진 12개를 잡으며 완봉승을 거두면서 최동원은 한 시대를 완벽하게 지배한 투수라는 점을 각인시켰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 시기 경남고의 야수 전력은 그리 강한 것은 아니라서 이 청룡기 우승만이 최동원이 내세울 수 있는 고교 무대 주된 경력이 되고 말았다.

이 때의 경기는 35년 뒤인 2011년 고교야구 전설의 리매치 경남고 vs 군산상고의 모티브가 된 경기였는데, 최동원이 생전에 모습을 보인 마지막 무대이기도 했다. 그리고 이 시점 이후 양상문의 부산고에게 부산 야구의 패권을 내주면서 한 동안 침체에 들어갔다.

2.4. 영광의 지속

1980년대 들어서면서 고교야구 무대가 어느 정도 평준화가 된 탓에 경남고는 우승을 쉽게 할 수 있던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꾸준히 성과를 내면서 명문의 위상을 이어갔다. 무엇보다 하나의 에이스에 의존하기보다는 탄탄한 선수층을 바탕으로 한 위상이 강력했지만, 동시에 고교무대에서 특급 에이스가 차지하는 비중을 생각해 본다면, 아깝게 우승을 놓치는 이유이기도 했다. 1984년 두 차례 준우승과 1987년 두 차례 준우승이 그 증거일텐데, 특히 1987년에는 경험으로 보면 우위에 있던 대전고와의 청룡기 대회에서는 구대성이라는 특급 에이스에 막히면서 지는 등, 결정적인 순간에 아쉬운 부분이 많았다. 대표적으로 1984년 서울고와의 대통령배 결승에서 3:1로 앞서다가 당한 대역전패로 대통령배 우승을 날리기도 했다.

이런 아쉬운 우승과의 인연은 1990년 대회 최우수선수상을 탄 박현승을 앞세워 청룡기 우승에 성공하면서 깨끗하게 씻어내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손인호가 뛰던 1992년 다시 두 차례 준우승을 차지하면서 강호로서의 위상을 이어갔다.

2.5. 송승준의 시대

송승준

1997년 두 차례 4강을 달성했던 경남고의 주역은 예의 그 탄탄한 선수층에 더해 2학년이었던 에이스 송승준이 건재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송승준이 3학년이 된 1998년 경남고는 오랜 침묵을 깨고 다시 화려하게 비상했다. 비록 첫 대회인 대통령배 결승에서는 경남상고 상대로 연장 12회 한 점차로 앞서다가 끝내기 홈런을 얻어맞고 지는 바람에 대회 첫 우승에 또 실패했지만, 나머지 청룡기와 봉황대기에서는 다른 팀들을 압도하면서 우승에 성공하며, 1998년을 경남고의 한 해로 만들었다.

경남고등학교 에이스 이대호

송승준은 이 때의 활약을 바탕으로 메이저리그에 진출했지만, 그 외 우승에 기여했던 2학년 강민영이나 타자 신민기, 김진욱, 서정호 같은 선수들은 프로에서 대성하지 못하고 사라진 아쉬운 세대이기도 했다.

2.6. 2000년대

2000년대 경남고 야구부는 위기에 봉착하게 된다. 학부모와 코치진과의 갈등이 원인이 되어 우수한 선수 수급에도 어려움을 겪었고, 급기야 2003년에는 집단으로 전학을 가면서 단 한 차례도 전국무대에 서지 못하는 사태가 빚어진 것.[6] 대표적으로 이 무렵에 경남고를 떠나 전학을 간 선수가 서동환이다. 이런 사태로 경남고의 전력은 약화된 채로 봉황대기에 참가했는데, 누구나 참가에 의의를 둔 줄 알았던 경남고 야구부는 2학년으로 유격수에서 투수로 급히 전향한 김상록의 전경기 완투쇼에 힘입어 극적으로 우승에 성공하면서 팀의 위기를 넘겼다.

그 뒤로는 탄탄대로 2006년 이상화-이재곤의 원투펀치를 앞세워 청룡기 우승, 2007년에는 하준호-장성우 배터리를 앞세워 다시 청룡기 우승, 2008년에는 청룡기 3연패를 노렸지만, 대구고에게 끝내기 안타를 맞으면서 패하며 우승을 놓쳤다. 하지만 2010년 다시 심창민-한현희 원투펀치를 앞세워 청룡기 우승에 성공하면서 강호로서의 입지는 여전하다는 점을 보여줬다. 다만 2010년대 접어들면서 팀의 전력이 약간 하향세인 점은 아쉬운 부분.

3. 야구대제전

야구대제전 첫 2연패를 달성한 팀.
  • 역대전적 : 12승 3패(부전승 1승 포함)
  • 최고기록 : 우승(제1회 야구대제전, 제2회 야구대제전)

제1회 야구대제전(1979년), 제2회 야구대제전(1980년)을 모두 석권하며 처음으로 2연패를 달성했다. 당시 야구대제전은 실업야구와 아마야구의 에이스들이 참가했으며 지금과 달리 지역색이 워낙 강하고 모교에 대한 애교심이 강해서 고교야구가 무척이나 강세였던 시기였기때문에 선수들도 부상등을 이유로 빠지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3.1. 1회 야구대제전

1회 야구대제전에서는 1회전에서 휘문고등학교와 만나 4:3 신승으로 16강에 진출했다. 16강에서 임호균을 앞세운 인천고등학교를 만났지만 최동원를 앞세워 3:0으로 승리를 거뒀다. 이후 8강전에서 광주제일고등학교를 꺽고 올라온 배문고등학교와의 격돌했지만 우경하(1회 솔로), 박순철(2회 솔로), 김용희(3회 솔로)의 홈런등으로 8:0으로 7회 콜드게임 승리를 거두며 4강에 진출, 4강에서 지역 라이벌 부산고등학교와 마주하게 되었다.

부산고등학교양상문을 선발로, 경남고등학교는 휘문고, 배문고전때 위장선발로 투입되었던 박정후를 선발로 내세웠다. 그러나 이 라이벌전은 양상문이 4회에 우경하-김용희-차동열에게 3연타자 홈런을 얻어맞으며 3실점을 했고 4회에 3:0로 앞서나가자 경남고등학교는 최동원을 4회 말에 투입했고 최동원은 4이닝을 1실점으로 막아내며 경남고의 결승진출에 일조했다. 양상문은 선발투수로써도 아쉬운 모습을 보였지만 좌익수로 투입되었던 8회에 송구실책으로 1실점을 내주며 4실점 모두 본인이 기록하는 등 최악의 경기를 치뤘다.

결승전에서는 이만수-장효조-우용득이 버티던 대구상업고등학교를 꺽고 올라온 선린상업고등학교와 맞붙게 되었는데 경남고등학교는 최동원을 선발로, 선린상업고등학교는 이길환을 선발로 내세웠다. 경남고가 3번타자 우경하가 솔로홈런을 치면서 앞서나갔으나 곧이어 선린상고가 4번타자 김우열이 볼넷으로 출루한후 도루한 상황에서 5번타자 정종연이 안타를 치며 김우열을 홈으로 불러들이며 1:1의 균형을 맞추었다. 5회초 경남고는 4번타자 김용희가 적시타로 1득점, 6회초 우경하가 솔로홈런으로 3:1을 만들며 경남고가 앞서나갔다. 선린상고는 6회말 이해창최동원에게 솔로홈런을 치며 3:2로 따라붙었고 팽팽한 접전을 유지했으나 6회초에 교체투입된 투수 유남호가 7회초에 김성관에게 2타점 적시타를 맞고, 9회말에 홈런을 맞으며 6:3으로 경남고가 승리하게 되었다. 이날 최동원은 9이닝 4피안타 3실점 완투승을 기록하며 승리에 일조했고 최우수투수상을 수상했다. 김용희는 최우수선수(MVP)를 수상, 결승전에서 2홈런을 기록한 우경하는 수훈상을 받았다.

3.2. 2회 야구대제전

전년도 우승팀이었던 경남고는 배문고와의 1회전 경기에서 에이스 최동원을 투입하지도 않고 7:2로 승리, 2회전에서 1회 대회 결승전 상대였던 선린상고를 만나서 위장선발로 사용한 박정후가 1회를 채 마무리 짓지도 못하고 최동원과 교체되었고 김용희의 홈런과 우경하의 2루타등으로 5:2 승리를 거두었다.

8강전에서 동산고등학교와의 경기에서 천창호가 역투를 펼치며 6:3으로 승리를 하며 4강에 진출했고 4강전에서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지역 라이벌인 부산고등학교와 2년 연속으로 마주하게 되었다.

경남고는 1회에는 천창호를 올렸고 2회에는 최동원을 올리며 팀 승리에 전력을 다했고 부산고도 김재열과 안창완을 투입하며 지난해 패배를 설욕하고자 했다. 그러나 투수전이 될 것이라는 모든이의 예상을 깨고 2회부터 2:2로 타격전의 양상으로 흘러갔다. 그러나 김용희가 3회에 투런홈런을 기록하며 앞서나가기 시작했고 이후 부산고는 최동원에게 3점을 더 뽑아냈지만 막강한 경남고의 타선을 넘지 못하고 8:5로 2년연속 4강에서 라이벌인 부산고를 격파했다.

결승전에서는 군산상업고등학교를 꺽고[7]올라온 중앙고등학교와 경기를 가졌다. 경남고는 최동원을, 중앙고는 계형철을 선발로 내세웠는데 계형철의 폭투와 실책으로 경남고가 2:0으로 앞서나가던 4회, 최동원을 상대로 운몽룡의 번트를 경남고 내야수가 실책을 기록하며 2실점하며 2:2 동점. 그후 중앙고는 윤몽룡을 구원투수로 올렸고 최동원과 윤몽룡의 투수전이 이어졌다.

팽팽하던 투수전이 깨진건 8회에 경남고 우경하가 1타점을 기록했고 최동원이 9회말까지 무실점으로 막아내며 3:2로 대회 첫 2연패를 달성했다. 최동원은 2년연속 최우수 투수상, 김용희는 2년연속 최우수선수(MVP), 우경하는 2년연속 수훈상을 기록했다.

3.3. 3회 야구대제전

3회 대회때는 1981년 코리안시리즈 중이라 코시진출팀 롯데 자이언트 소속이었던 최동원은 참가하지 못했지만 황규봉, 이선희가 불참한 경북고를 상대로 김용희의 만루홈런등을 포함해 7:4 역전승으로 2회전에 진출했다. 그러나 2회전에서 만난 동대문상고의 선발투수 강철원을 공략하지 못했고 오히려 윤동균, 이광국의 홈런으로 7:4 패배를 기록하며 경남고의 야구대제전 연승행진은 멈추게 된다.[8]

3.4. 2013년 야구대제전

2013 야구대제전에서는 전주고를 만나 1회전 조별 탈락을 기록했다.

3.5. 2014년 야구대제전

2014 야구대제전에서는 광주 동성고를 만나서 1회전 조별 탈락을 했다.

4. 부산고등학교와의 라이벌리

2011년에 열린 경남고 부산고 라이벌전


지역 라이벌로는 부산고등학교가 있다. 경남고 부산고는 전통적으로 상대 학교보다 뭐든 잘해야 하는데 야구도 예외는 아니다.[기사

경남고의 에이스였던 이대호가 말하길 "정기전은 없지만 지역예선에서 만나게 되면 무조건 이겨야 했다."고 이야기 했을 정도였으며 이들의 라이벌리를 이용한 이벤트 경기가 2011년에 열리기도 했다. 다만 2010년 이후로는 경남고등학교가 부산고등학교에 비해 아쉬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5. 출신 선수

이름 포지션 프로입단 경력
장태영 투수 - 육군(1954~?)
허구연 내야수 - 상업은행(1970)-한일은행(1975~1976)
천창호 투수 1982년 원년멤버 롯데(1982~1985)-빙그레(1986~1988)-태평양(1989)
김용희 내야수 1982년 원년멤버 롯데(1982~1989)
최동원 투수 1982년 원년멤버 롯데(실업)(1981)-한국전력(1982)-롯데(1983~1988)-삼성(1989~1990)
이종운 외야수 1989년 2차 2라운드 롯데(1989~1997)-한화(1998)
김상현 투수 1992년 2차 3라운드 롯데(1992~1997)
박현승 투수 1995년 2차 1라운드 롯데(1995~2009)
박석진 투수 1995년 신고선수 삼성(1995~1997)-롯데(1997~2003)-삼성(2004~2006)-롯데(2007)-LG(2007~2008)
강봉규 외야수 1996년 2차 7라운드 두산(2000~2005)-삼성(2006~)
손인호 외야수 1998년 2차 1라운드 롯데(1998~2007)-LG(2007~2012)
임경완 투수 1998년 우선지명 롯데(1998~2011)-SK(2012~2014)-한화(2015~)
김진수 투수 1998년 우선지명 롯데(1998~2006)-두산(2006~2009)
송승준 투수 1998년 아마추어 자유계약(BOS)/
2007년 특별지명
BOS(1998~2002)-MON(2002~2004)-SAN(2005)-CAN(2006)-롯데(2007~)
김태완 내야수 2000년 2차 3라운드 LG(2004~2012)-삼성(2013~)
박진환 내야수 2000년 2차 5라운드 롯데(2004~2012)
이대호 내야수 2001년 2차 1라운드 롯데(2001~2011)-오릭스(2012~2013)-후쿠오카(2014~)
장민석 외야수 2001년 2차 1라운드 현대(2001~2007)-넥센(2008~2013)-두산(2014~)
이정민 투수 2002년 우선지명 롯데(2002~)
박정준 외야수 2003년 우선지명 롯데(2003~2010)-넥센(2011~2012)-NC(2013~)
류은재 외야수 2006년 신고선수 KIA(2006~)
이상화 투수 2007년 우선지명 롯데(2007~)
이재곤 투수 2007년 우선지명 롯데(2007~)
장성우 포수 2008년 우선지명 롯데(2008~2011)-경찰(2012~2014)- 롯데(2015~)
하준호 투수, 외야수 2008년 2차 1라운드 롯데(2008~)
김민하 외야수 2011년 신고선수 롯데(2011~)
서진용 투수 2011년 1차지명 SK(2011~)
심창민 투수 2011년 1차지명 삼성(2011~)
신본기 내야수 2012년 2차 14라운드 롯데(2012~2014)-경찰(2015~)
한동민 1루수, 외야수 2012년 9라운드 SK(2012~2014)-상무(2015~)
한현희 투수 2012년 1차지명 넥센(2012~)
김준태 포수 2012년 신고선수 롯데(2012~)
김재민 포수 2013년 8라운드 LG(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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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4대 메이저 + 협회장기
  • [2] 1954년 대회 우승팀으로 1950~53년 대회는 6.25 전쟁으로 취소
  • [3] 1957년 우승팀으로 1956년 대회는 운동장 보수 관계로 취소
  • [4] 해당사진은 육군 야구단소속 당시 찍은 사진.
  • [5] 당시에는 6-3-3 학제가 아니라 중학교가 고등학교와 합해서 6년제이던 시절이다.
  • [6] 이종운이 감독으로 부임함
  • [7] 정확하게는 9회말에 오심이 일어나서 군산상고의 김봉연이 1루심 김옥경을 손으로 밀치며 퇴장당했고 이에 불복한 군산상고가 경기를 거부하며 몰수패 당했다.
  • [8] 참고로 동대문상고는 8강에서 만난 부산고에게 12:3으로 콜드게임패배를 기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