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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오르크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

last modified: 2015-04-11 13:58:06 Contributors



Georg Wilhelm Friedrich Hegel(1770년 ~ 1831년). 독일철학자 근데 이 사람 생각나지 않아? 이 사람도 이분하고도 많이 닮았다. 이분도 빼놓으면 섭하다 참 닮은사람이 많기도 하다..

Contents

1. 개요
2. 그의 사상
2.1. 변증법
3. 영향
4. 비판
5. 그 외
6. 관련 항목

1. 개요

칸트, 피히테, 셸링 등의 독일 관념론을 계승, 완성시켰다는 평가를 듣는다. 근대 철학을 완성시켰으며 현대 철학의 문을 열었다. 철학의 역사상 가장 거대한 체계를 구상했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감각과 이성, 주관과 객관의 차이를 하나의 체계 안에서 사유하려 했던 철학자. 물론 그 때문에 들뢰즈 등을 위시한 현대의 철학자들에게 비판을 받기도 하였다.

젊은 시절 철학자 셸링, 시인 덜린과 깊은 우정을 나눴다고 전해진다. 실제로 젊은 나이에 교수가 되었던 셸링이 헤겔의 자리를 알아봐주기도 했었다고 한다. 하지만 헤겔이 『정신현상학 Phenomenologie des Geistes』을 통해 셸링을 비판하자 셸링은 헤겔의 주요한 논적으로 돌아서게 된다.

주저로 꼽히는 것은 『정신현상학』, 『논리학 Wissenschaft der Logik』, 『법철학 Philosophie des Rechts』. 물론 세 권 다 어렵기로 악명이 자자하다...

대학에서 강의를 계속하다가 1831년 콜레라로 급사한다. 죽은 뒤엔 베를린 도르테엔 시립묘지 피히테 옆에 묻힌다.

현대의 대표적인 헤겔주의자로는 위르겐 하버마스(넓은 의미에서), 악셀 호네트, 찰스 테일러, 리차드 로티, 피츠버스학파의 로버트 브랜덤과 존 맥도웰 등이 있으며, 이외에 셀 수 없을 정도의 철학자들이 헤겔의 영향권 아래에 있다. 슬라보예 지젝은 스스로 헤겔주의자라고 칭한다. 특히 주류 학계와는 상이한 헤겔 해석으로 논쟁의 중심에 서 있다.

2. 그의 사상

헤겔의 방대한 철학 체계를 하나하나 분석해보는 것은 이 자리에서 가능해 보이지 않으므로, 여기에선 그의 철학에서 사용되는 방법론 등 밑그림만 그려보기로 한다.

2.1. 변증법

헤겔 사상은 '변증법'이라는 방법론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간단히 말해, '변증법'은 서로 대립되어 보이는 두 축 사이에서 하나를 다른 하나를 통해 '부정'함으로써 새로운 결론을 도출하는 방법론이다. 여기에서의 '부정'은 두 축 사이에서 하나를 배제하고 다른 하나를 선택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일견 대립되어 보이는 두 축 사이의 밀접한 관련을 밝혀냄으로써 새로운 결론을 도출하기 위한 과정으로써의 의미를 가진다. 이렇기에 헤겔은 변증법의 과정 속에서 진행되는 부정을 '규정적 부정'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헤겔의 변증법은 "사람은 같은 강에 두 번 지나갈 수 없다"라고 말한 헤라클리토스의 사상과도 비슷하다. 농담이 아니라 재야철학자 윌 듀란트는 본인의 저서에서 "정신과 행위에 대한 근대 철학의 문제나 해답 가운데 그들(소피스트)이 생각하지 못했거나 논하지 않은 것은 거의 없다"고 평했다.

헤겔은 변증법이라는 방법론을 자신의 체계에 도입함으로써 흄 등의 회의주의, 칸트의 선험 관념론, 셸링의 객관 관념론 등을 비판했다. 헤겔의 입장에서 "진리는 저기쯤에 있는데 인식은 저기에 도달하지 못한다"고 말하는 것은 이미 멋대로 진리의 위치를 가늠잡은 다음 인식이 도달할 수 없을 거라고 말하는 것에 불과하다. 그렇지만 헤겔은 칸트와 셸링의 방향과는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는데, 인식에 선험적인 기준들을 정해놓음으로써 한계마저 정하는 것과 존재와 세계의 관계에서 한쪽에 절대적인 우위를 두는 것 모두 헤겔의 변증법적 방법론과는 맞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헤겔의 기획은 새로운 인식을 통해 존재의 변화까지 설명하려 한 『정신현상학』등 그의 주저에 되풀이된다.

한편 그는 변증법의 논리를 역사철학에도 적용했다. 이성이 인류를 진보로 이끈다고 보았던 그는 이성이 진보를 일궈내는 메커니즘이 존재하며 그것이 바로 변증법이라고 보았다. 그는 그리스와 로마의 예를 들어 그리스의 자유로움과 로마의 외적 율법주의(엄격한 법치)가 변증법적 과정을 거쳐 현대 서유럽의 법체계를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3. 영향

헤겔 이후의 철학은 그게 비판이 되었든 동의가 되었든 간에 헤겔이 뿌려놓은 씨 위에서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칼 마르크스는 스스로를 "거꾸로 선 헤겔학도"로 표현했을 만큼 변증법적 방법론을 그의 체계에 도입하고 있지만, 청년 헤겔 학파 등에 대한 그의 무지막지한 비판 덕분에 종종 헤겔 안티로 오해받기도 한다. 레닌, 게오르크 루카치, 테오도르 아도르노 등의 철학은 변증법적 방법론을 마르크시즘에 적용시킨 대표적인 사례이다. 하이데거를 위시한 해석학도 헤겔에게서 출발한다. 슬라보예 지젝자크 라캉과 헤겔 철학 사이의 연결점을 파악하려 시도하기도 하는데, 실제로 라캉과 헤겔 사이에도 연결고리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일단 라캉이 알렉상드르 코제브의 그 유명한 헤겔 강의를 듣고 영향을 받았으니. 쇼펜하우어는 "헤겔의 전집을 읽는것보다 데이비드 흄의 저서 한 페이지를 읽는것이 더 가치있다."는 말로 헤겔에 대한 평을 일축해 버렸다.... 그외에도 헤겔을 비판한 대표적인 철학자들을 꼽자면 에드문트 후설, 쇠렌 키르케고르, 빌헬름 딜타이, 질 들뢰즈, 칼 포퍼가 있다. 분석철학도 19세기말에 러셀과 무어가 영국의 헤겔주의[1]를 혹독하게 비판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하지만 시대가 변해서 요즘은 영미철학에서도 헤겔을 진지하게 연구하고 있다. 물론 관념론을 긍정하는 건 아니다. 쉽게 말해서 영미분석철학이든 대륙철학이든 현대철학은 헤겔을 비판하는것에서 시작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애초에 철학사에서 근대와 현대를 구분하는게 가장 일반적인 분기점이 헤겔이다.

좀 다른 이야기지만 동양 철학과 헤겔을 연결시켜보려는 시도도 있다. "의식의 절대적 도야"를 목표로 삼은 헤겔과 동양 철학 사이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파악해보려는 것이다. 임석진의 "정신현상학" 번역본을 보면 헤겔철학과 동양사상의 접점으로 이끌 만한 논의들에 대해 제법 다양한 주석들을 볼 수 있다. 그러나 확고한 목적론을 지닌 헤겔 사상을 무정형의 변화를 기본으로 하는 동양사상에 대입하는 것은 근본적인 의미에서 어려운 것이라 하겠다.

4. 비판

나폴레옹 프랑스 시기에 출간된 그의 초기 저서 『정신현상학』이 부정적 사고를 전제로 하는 변증법 개념을 전면에 도입했다는 점에서 그는 일면 진보적 철학자로 여겨졌으나, 말년에 프로이센의 새로운 지배층 육성을 위한 베를린 대학의 철학 교수로 취임하면서 『법철학』을 출간해 헤겔이 프로이센 독재를 옹호하는 관제 철학자가 아닌가 하는 비판이 있어왔다. 이 논쟁은 그의 사후, 헤겔학파가 좌우파로 나뉘어지며 매우 중요한 쟁점이 된다.

그의 철학은 너무나도 낭만적이며 몽상적이라는 점 또한 그가 비판받는 이유 중 하나이다. 포퍼는 그의 저서에서 헤겔이 칸트를 자의적으로 해석했다며 비판하기도 했다.하지만 포퍼는 헤겔을 자의적으로 해석했다

이러한 점들에 대한 반대급부로, '현실'에 존재하는 '존재'로서의 인간과 세계관을 들고 나온 것이 바로 실존주의이다.

철학도들은 헤겔부터 어려워진다고 원성을 내기도 한다. 단순히 읽는게 아니라 내용의 의미를 "이해하려고" 들기 시작하면 뒷골이 쑤신다. 독일에서 어렸을때부터 살아서 독일어에 유창한 한 한국인 학생은 한국에서 대학에 다닐때 헤겔이 너무 어려워서 자신의 한국어 어휘력이 부족해서 수업을 못 쫓아가는줄 알고 독일어 원서를 집어들었다가 첫페이지를 보자마자 어지러움으로 정신을 잃다시피하면서 잠들었다고 한다.독일어가 그나마 낫다는게 함정 그래도 『정신현상학』은 칸트의 저작들 보다는 재미있다. 관상학, 골상학 까면서 관상학자는 싸대기를 때리고 골상학자는 두개골을 부셔야 한다, 그런 이야기도 나오고. 하지만 헤겔의 논리학 다루는 그런 정신나간 수업이 있다면 도망쳐라! 당연한 얘기를 왜 굳이 하고 그래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 철학자 대부분에게 좋으나 나쁘나 영향을 끼쳤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5. 그 외

동시대의 철학자 아르투어 쇼펜하우어가 그를 매우 싫어했다고 전해진다. 헤겔 개인을 인간적으로 싫어했다기보다는, 서양철학 전체를 다 까는 그의 입장에서는 헤겔이 당시 서양철학의 적통이기 때문에 주요 비판대상이 된 것. 쇼펜하우어는 베를린 대학에서 헤겔과 같은 시간에 강의를 하여[2] 정면대결을 했으나, 수강자의 숫자는 쇼펜하우어의 참패. 베를린 대학의 대표 철학과 교수로써 유럽 전역에 명성을 떨치던 헤겔을 갓 데뷔한 쇼펜하우어가 이길 수는 없었다. 그리고 헤겔이 사망하고 나서 다시 쇼펜하우어는 명성을 얻기 시작한다.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헤겔의 하숙방 밑을 지나갈 때 헤겔이 "저기 절대정신이 걸어간다" 라고 했다는 일화가 있다. 이렇게만 보면 아무것도 아닌것 같지만, 당시 나폴레옹은 헤겔의 조국인 프로이센을 격파하고 수도 베를린에 입성하던 중이었다. 말하자면 제 나라를 침략한 적국의 수장을 저렇게 찬양했다는 것. 나폴레옹이 당시 얼마나 유럽 진보적 사상가들의 희망이었는지 잘 알게해주는 대목이다. 그런데 황제에 올라 배신 그런데, 헤겔이 사용한 절대정신(absoluter Geist)의 Geist의 의미는 우리가 알고 있는 영혼(Spirit) 이외에도 인문적, 역사적, 사회적 사상 등의 의미도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맹목적인 나폴레옹 찬양보다는 '(자유와 평등 같은 근대적) 시대정신을 체화한 존재' 이런 의미로 해석하는 게 더 정확하다. '이성의 간지'라는 표현을 떠올려보라.

일반적으로 근대 철학과 현대 철학을 구분하는 마지막 경계가 바로 헤겔이다. 근대철학의 계보는 헤겔이 이어받았으며 그와 동시기의 다른 학자들은 헤겔 철학을 비판하면서 현대 철학에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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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정확하게 말하자면 칸트로부터 시작된 독일관념론 전부
  • [2] 재미있게도 이 자리는 헤겔이 직접 마련해주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