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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리 케이힐

last modified: 2015-02-13 22:02:11 Contributors


첼시 F.C. No. 24
게리 제임스 케이힐
(Gary James Cahill)
생년월일 1985년 12월 19일
국적 잉글랜드 (England)
출신지 셰필드 (Sheffield)
포지션 센터백
신체 조건 188cm, 71kg
등번호 잉글랜드 축구 국가대표팀 - 5번
첼시 FC - 24번
유소년 클럽 아스톤 빌라 FC (2000~2004)
소속 클럽 아스톤 빌라 FC (2004~2008)
번리 FC (2004~2005, 임대)
필드 유나이티드 FC (2007~2008, 임대)
볼턴 원더러스 FC (2008~2012)
첼시 FC (2012~)
국가 대표
(2006~)
33경기, 3골


Contents

1. 소개
2. 아스톤 빌라 FC시절
3. 필드 유나이티드 시절
4. 볼턴 원더러스시절
5. 첼시 FC 시절
5.1. 2012-2013 시즌
5.2. 2013-2014 시즌
5.3. 2014-2015 시즌
6. 플레이 스타일

1. 소개


첼시 FC축구선수.
등번호는 24번, 포지션은 수비수 이다.


2. 아스톤 빌라 FC시절


유소년 팀을 아스톤 빌라에서 보냈고 성인 무대에 데뷔했으나 11월 번리 FC로 임대를 떠났다. 번리에서 27경기 출장해 1골을 득점하는등 괜찮은 활약을 보이자 2005~2006 시즌에 원 소속팀으로 복귀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원정 경기에서 아스톤 빌라 FC 소속으로 프로 데뷔전을 치렀으며, 이어 지역 라이벌인 웨스트 브롬위치 알비온 FC와의 경기에서 홈 경기 프로 데뷔를 했다.

2005~2006시즌은 7경기 2006~2007시즌은 20경기 출장으로 꾸준히 출전기회를 늘려갔으나 시즌이 시작될 때 케이힐은 부상중이었으며, 부상을 달고 출한 나머지 2007~2008 시즌에는 1경기 출장에 그쳤다.

3. 필드 유나이티드 시절


부상으로 인해 많은 경기에 출전하지 못하지 2007년 9월 케이힐은 3개월 단기 임대로 셰필드 유나이티드의 유니폼을 입게 되었다. 크리스탈 팰리스 FC와의 경기에 처음 나선 그는 몇 일 뒤에 스토크 시티전에서 첫 골을 넣는다. 이후 꾸준히 출전해 16경기 2득점을 올리는등 수비수로써 무난한 활약을 보이게 된다.

4. 볼턴 원더러스시절


2008년 1월 이적시장에서 버밍엄 시티 FC와 볼턴 원더러스, 터키 쉬페르리그베식타쉬 JK가 게리 케이힐에게 관심이 있다는 루머가 나왔고, 2008년 1월 30일 3년 반의 계약으로 리복 스타디움에 입성하였다. 레딩 FC와의 경기에서 데뷔를 한 케이힐은 13경기 출전해 좋은 활약으로 '올해의 이적선수'상을 받았다.

2008~2009시즌 33경기 출전해 3골 4도움으로 볼턴 수비를 책임지게 되고 팀은 13위를 기록하게 된다.

2009~2010 시즌에 이청용이 볼턴으로 영입되었고 이청용과 같이 호흡을 맞추게 된다.

하지만 2010년 2월 케이힐은 풀럼과의 경기를 앞두고 팔이 크게 부어오르며 통증을 호소했고 검사결과 팔에 혈액이 응고되어 순환에 어려움을 겪는 혈전류 진단을 받았다. 이로 인해 당초 시즌 아웃이 예상되었지만, 3월 28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의 리그 홈 경기에서 선발 출장하며 조기 복귀하였고 29경기 출장 5골 2도움으로 좋은 활약을 펼친다. 하지만 팀은 저번 시즌보다 1단계 떨어진 14위로 마감한다.

2010~2011시즌 역시 36경기에 나서 3골을 기록하고 이청용과 같이 호흡을 맞추고 FA컵 4강에 드는 등 좋은 활약을 펼쳤으나 정작 팀은 작년과 똑같은 14위를 기록하게 된다.

2011~2012시즌 시작하기전 이청용이 천하의 개쌍놈 톰밀러에게 살인태클을 당해 시즌 아웃이 되고 팀 분위기가 어수선해지는 상황에서도 리그 19경기 출전해 2골 1도움, 컵대회 2경기 출장 1골을 기록하게 되지만 팀은 하위권으로 곤부박질치고 있었으며 DTD를 시전하고 있었다.

사실 11-12 개막 전부터 볼턴과 케이힐은 서로 연장계약을 생각하고 있었지만 이미 국대 주전 센터백으로 도약한 케이힐의 역량이 너무 뛰어나다보니 볼턴이 그에게 거액의 재계약을 안겨주기가 어려웠다. 여기에 이청용의 장기 부상으로 인해 팀이 어수선해진 것도 한 몫했다. 결국 볼턴은 개막 전에 케이힐을 팔아야 했지만 예상외로 첼시 외에는 케이힐에 대한 오퍼가 없었고, 결국 8월 내로 파는데 실패한다. 그리고 재계약에도 실패하면서 사실상 케이힐을 헐값에 팔 수 밖에 없는 상황.[1] 결국 120억원 (700만 파운드)이라는 헐값에 볼턴은 그들의 기둥을 팔아야 했다.

5. 첼시 FC 시절


천운을 타고난 이적

볼턴에서 활약으로 인해 2012년 1월 첼시로 이적하게 되고 등번호 24번을 부여 받게 된다. 아스톤 빌라, 임대 시절을 포함해 팀 수상과 관련이 멀은 케이힐은 이때 부터 전성기가 시작된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홈경기에서 자신에 등번호 24번을 달고 첼시 데뷔전을 치루게 되고 FA컵 16강 버밍엄 시티 경기에서 풀타임 활약을 한다. 하지만 경기는 1:1로 겨우 비기게 되고 3월 재경기를 치르게 된다.

이때 첼시는 빌라스 보아스 감독이 있던 시절이고 첼시 흑역사에 포함되는 시기였다. 이런 와중에도 케이힐은 생애 최초로 UEFA 챔피언스리그16강 SSC 나폴리 원정경기에 출전해 풀타임을 소화했지만 팀은 3:1로 패해 탈락직전 이라 쓰고 탈락이라 한다.에 몰리게 된다.

이후 리그 경기에서 꾸준히 활약을 펼쳤지만 감독인 빌라스 보아스는 케이힐 마음을 아는 지 모르는지DTD를 시전하고 있었고 첼시는 리그 5위로 떨어지게 된다. 이적해 온지 얼마 안된 상황에서 프랭크 램파드, 드록바중심으로 한 노장들과 빌라스 보아스 감독간 불화가 한창인 때라 팀 분위기가 개판 5분전 상황이였다. 그래도 빌라스 보아스 아래 꾸준히 출전 기회를 잡는다.

결국 웨스트 브롬위치전 패배이후 빌라스 보아스가 경질되고 소년명수로베르토 디 마테오가 감독 대행이 되면서 선수간 불화는 끝나게 된다.

디 마테오체제 하에 첼시는 안정을 되찾아 가고 바로 3월 7일 열린 버밍엄 시티와 16강 재경기를 가지게 된다. 전반적으로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원정 분위기가 겹쳐 쉽지 않은 경기가 될 것으로 예상되었고 전반에는 무득점으로 경기가 끝났다. 그러나 후반에 후안 마타하울 메이렐레스가 연속으로 골을 넣으면서 2:0으로 이겼다. 이경기에서 케이힐은 풀타임 활약해 팀에 승리에 공헌을 하게 되고 디 마테오 감독의 신임을 얻게 된다.

3월 18일 열린 8강 레스터 시티와 경기에서는 첼시 첫 번째 골이자 자신에 데뷔골을 넣었다. 이날 경기는 무암바의 심장마비로 인해 토트넘 대 볼턴의 경기가 중단된지 하루 뒤에 경기가 진행되었다. 선제골을 넣은 전 동료 게리 케이힐은 그를 위해 "Pray 4 Muamba"라는 이너셔츠를 보여주는 세리머니를 보여주는 훈훈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페르난도 토레스 2골에 힘입어 5:2로 승리하고 4강에 진출한다. 그리고 토레스는 2골 2어시를 기록하며 1595분만의 무득점 행진에 마침표를 찍었다.

3월 22일 맨체스터 시티와 원정 경기에서 후반 15분 선제골을 터트리나 세르히오 아궤로에게 패널티 동점골, 사미르 나스리에게 역전골을 허용하며 2:1로 역전패 하고 만다.

4월 5일 챔피언스리그 8강 SL 벤피카전 홈경기에, 한 명이 퇴장당한 벤피카를 상대로 고전하다가 램파드의 패널티킥과 메이렐레스의 막판 골로 2:1로 이기면서 무난히 4강에 진출했다. 케이힐은 풀타임 출전해 팀에 2:1 승리를 돕는다.

16일날 열린 FA컵 4강전 경기에서 후반 13분 교체 투입되 팀에 5:1 승리를 돕는다.

4월 19일 챔피언스리그 FC 바르셀로나와 4강전 홈경기에서 필사적인 수비를 선보여 전반 추가시간 드록바선제골을 잘지켜 1:0으로 승리한다.

하지만 4월 25일 캄프 누에서 벌어진 바르셀로나 원정 4강전에서 11분 만에 햄스트링 부상으로 인해 조제 보싱와와 교체되었다. 교체된 뒤 세르히오 부스케츠, 안드레스 이니에스타의 골로 2:0으로 첼시가 뒤지게 되며 탈락의 가능성이 짙어진 상황이 벌어졌다. 설상가상으로 전반 36분 존 테리에 어이없는 퇴장으로 첼시 선수들은 궁지에 몰리게 된다. 결국 포지션 가릴것 없이 육탄방어를 선보이며 전반 종료 직전 하미레스의 골로 2:1을 만든다. 이대로 경기가 끝나면 원정골 다득점 원칙에 따라 바르셀로나가 탈락하는 상황. 바르셀로나 선수들은 더욱 조급해져 계속 밀어 붙였으나 첼시에 육탄방어에 번번이 막히게 되고, 리오넬 메시가 페널티킥 찬스에서 골대를 맞히며 실축하는 등 상황은 더욱 어렵게 되었다. 결국 후반 종료 직전 무리한 공격을 펼치던 바르셀로나의 헐거운 수비를 뚫고 토레스는 역습 한방으로 동점골을 넣어 첼시가 결승에 진출함이 확실히 되었다.

5월 6일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열린 리버풀 FC과에 FA컵 결승전에는 결장하게 된다. 첼시는 하미레스, 드로그바의 골로 2:0으로 앞서 나가게 되지만 후반 54분에 투입된 앤디 캐롤에게 추격골을 허용해 경기가 리버풀 쪽으로 넘어가게 된다. 이후 리버풀은 계속 밀어붙여 81분에 캐롤이 추가골을 만들어 내나 했지만... 헤딩이 라인을 완전히 넘지 않으면서 골 선언이 되지 않았고, 이로 인해 캐롤과 루이스 수아레즈가 단체로 이성을 잃은 와중 수아레즈가 거칠게 항의한 결과 옐로카드를 수집한다. 그러게 세레모니 하지말고 확인사살 제대로 했어야지 추가골을 뽑아내지 못한 리버풀은 결국 패배하게 되고 첼시는 2000년대 들어 4번째 FA컵 우승을 차지하게 된다. 케이힐은 FA컵 4경기 출전해 3경기 풀타임, 1경기 교체로 대부분 경기에 출전해 좋은 활약을 보였으며 생에 첫 FA컵 우승메달을 받았다!

디 마테오 감독대행 체제하에 FA컵 우승을 하고 기분좋게 20일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을 준비할 수 있게 되었지만... 상대는 바이에른 뮌헨이고 게다가 결승전 장소가 뮌헨 홈구장 알리안츠 아레나이다.[2] 게다가 주전이 대거 경고 누적, 부상으로 인해 빠진 첼시는 여간 어려운 상황이 아니었고 리그 경기에서도 6위를 기록해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하지 않는 이상 다음 챔피언스리그 출전은 물건너 가고 유로파리그에 나가야 될 상황이였다.

이때 케이힐은 부상에서 막 회복된 시점이었고 팀 분위기가 다시 어수선해졌을 때였다.
결전의 날 케이힐은 선발 출전해 120분 동안 그라운드를 누비면서 육탄방어를 선보여 뮌헨의 파상공세를 잘 막아냈다. 이날 경기에서 예상대로 바이에른 뮌헨이 밀어붙였으며 후반 82분 토마스 뮐러의 선제골로 무난히 이길 것이라 생각되었지만... 5분뒤 드록바에 동점골로 경기는 다시 원점이 되었다. 연장 전반 3분 아르옌 로벤이 페널티킥을 실축해 승부차기까지 가게 된다.

잉글랜드 특유의 승부차기 컴플렉스 탓인지 첼시도 승부차기 역대 전적에서 2승7패로 절대적인 열세를 보여왔다. 뮌헨의 첫번째 키커인 필립 람이 성공하지만 첼시의 첫번째 키커인 마타의 슛은 마누엘 노이어의 선방으로 막혔고, 양팀 모두 두번째와 세번째 키커의 성공으로 스코어는 3-2.

뮌헨의 네번째 키커 이비차 올리치의 슛이 페트르 체흐의 선방으로 막히고 말고 첼시의 키커인 애쉴리 콜은 침착하게 성공하여 스코어는 3-3 동점이 된다.

다섯번째로 나온 뮌헨의 키커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의 슛이 성공한다면 뮌헨은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었지만, 슈바인슈타이거의 슛은 체흐의 손 끝을 맞고 방향이 틀어져 골대를 때리며 실패. 첼시의 마지막 키커는 '드록신' 드록바가 나섰고, 드록바는 침착하게 성공하면서 팀 창단 107년 만에 첫 챔피언스리그 우승컵을 가져간다. 11-12 MVP는 디디에 드로그바.

더불어 케이힐도 이적한 지 4개월 만에 FA컵,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이라는 더블을 경험하게 되고 최고의 시즌을 보냈다.

리그를 6위로 마쳤지만 챔피언스리그 우승팀 자동 출전으로 인해 내년도 챔피언스리그에도 출전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토트넘은 피눈물 흘리며 유로파리그로

그리고 볼턴 원더러스는 18위를 기록하게 되며 강등당하게 된다.

5.1. 2012-2013 시즌

12~13시즌 리그, 리그 컵, 챔피언스리그를 가리지 않고 꾸준히 출전했고 토트넘 전에서 과거 자신을 영입했던 빌라스 보아스 감독을 상대로 골을 뽑아내 제대로 비수를 꽂았고 경기는 첼시가 4:2로 역전승 했다.

9월 26일 리그컵 울버햄튼 원더러스를 상대로 팀의 선제골을 뽑아냈으며 풀타임 출전해 6:0 대승을 이끌었다. 다음 상대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 확정되었다.

리그컵 맨유전은 상당히 격앙된 양상으로 진행되었는데 3일전 리그 9라운드 홈경기 에서 맨유에게 석연찮은 패배를 당했기 때문. 홈에서 10년 동안 맨유에게 지지 않는 징크스가 이 경기로 인해 깨지게 되었지만 팬들은 크게 신경쓰지 않는 분위기였고 오히려 오심과 카드를 남발한 심판과 그 혜택을 받은 맨유에게 화살이 돌아갔다. 그래서인지 양팀 분위기가 상당히 좋지 않았던 판국에 리그컵에서 3일 만에 만나게 되니까 양팀 팬들은 "쌓인 게 있는데 마침 잘 만났수다."하는 분위기였다.

케이힐은 이 경기에 선발 출전해 팀이 2:1로 지고 있는 상황에서 후반 6분 동점골을 넣었다. 케이힐이 코너킥 찬스에서 헤딩한 것이 골대 안으로 들어갔고 안에서 맨유 선수가 걷어냈지만 골라인을 넘어갔기에 골로 인정되었다. 양팀 PK 반칙이 남발되고 120분 연장 혈투까지 가는 끝에 첼시가 맨유를 5:4로 이기고 8강에 올라갔고 리그 9라운드 패배를 되갚아주었다.

이후 출전한 FIFA 클럽 월드컵 결승 막판에 뜬금 퇴장을 당했는데 상대의 침대축구에 대한 불만으로 파울을 심하게 범한 것이 퇴장의 원인이었다.

2013년 후반기 들어서는 3월 17일 웨스트 햄 유나이티드전에서 무릎 부상을 당해 4월부터 수술에 들어가서 제대로 출전하지 못했다. 이 여파가 유로파리그에도 미쳐 32강 스파르타 프라하전을 제외하고 16, 8강전 모두 부상때문에 출전을 못하였으나 5월 2일 FC 바젤과 2차전에 중앙 수비수로 출전하면서 팀에 유로파리그 결승 진출에 공헌한다.

유로파리그 결승전에서 선발 출전해 벤피카의 공격을 필사적으로 막아낸다[3]. 후반 14분 페르난도 토레스의 골로 앞서나가나 싶더니 아스필리쿠에타의 핸들링 반칙으로 인해 페널티킥을 내주게 되고 1:1 원점이 된다. 벤피카의 날카로운 공격을 묵묵히 막아내면서 후반 추가시간 막판에 이바노비치의 극적인 버저비터 헤딩 결승골로 2:1로 승리하면서 첼시는 팀 창단 첫 유로파리그 우승을 경험함과 동시에 케이힐도 우승 커리어를 하나 더 쌓게 되었다.

5.2. 2013-2014 시즌


첼시가 가장 사랑하는 감독인 주제 무리뉴 휘하에서는 다비드 루이스보다 많은 선발 기회를 부여받으며 존 테리와 함께 듀오를 형성했는데 지난 시즌보다 훨씬 안정적인 모습을 보이며 팀 수비진에 기여했다. 8월 31일에 있던 뮌헨과의 UEFA 슈퍼컵 경기에서도 루이스와 짝을 이뤄 좋은 모습을 보이며 강력한 뮌헨의 공격진을 이전에 그랬던 것처럼잘 막아내었지만 안타깝게도 이번에는 팀이 무승부 끝에 승부차기에서 패배하고 말았다. 그 뒤에도 꾸준히 안정적인 모습을 보였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이번 시즌 최고의 센터백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그러면서 2013-2014시즌 올해의 베스트 일레븐 중 한 자리를 당당히 차지하면서 자신의 실력을 알리고 있다.

5.3. 2014-2015 시즌

시즌 초 팀의 무패에 가려졌지만 폼이 결정적으로 떨어졌다. 정확히 말하자면 잔실수가 많아졌다. 근데 실수가 좀 많다. 그렇지만 팀 분위기가 워낙 좋아 가려지다가 결국 15라운드 뉴캐슬 원정에서 먹힌 두 골에 모두 관여하며 폭망.
토트넘과의 경기에서도 해리 케인의 미친 질주를 막지 못하고 집중력이 심각하게 떨어진 모습을 보이며 5실점의 빌미를 가장 크게 제공했다...
첼시가 패한 두 경기에 모두 최하 평점을 받으며 지는 경기 족족 원흉이 되어가고있다. 체력이 한계에 도달한 것 같다.
올시즌 케이힐이 지난시즌과는 다른 모습을 보이는 이유는 자신의 최대 단점인 느린 발과 떨어지는 순발력이 체력 저하로 극악화 되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밑의 항목에도 나오겠지만 케이힐은 발이 느리고 순발력이 떨어진다는 약점을 존 테리의 커맨딩과 깔끔한 태클로 극복하는 선수인데 올 시즌에는 괜찮은 로테이션 자원이 없어서 거의 시즌 전경기를 소화하여 저하된 체력 때문에 자신의 약점을 태클 능력으로만 극복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른 것이다.[4] 실제로 시즌 초반에는 견고한 모습을 보였으나 시즌이 지날수록 집중력이 떨어지고 심지어는 태클마저도 둔탁해지는 모습이다.[5] 케이힐이 이렇게 불안한 모습을 보이자 첼시 팬들은 괜찮은 수비수 영입을 바라고 있다.[6]아니면 주마라도 쓰던지...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토트넘전 최악의 부진 이후 94년생(9살이나 어리다) 수비수인 퀴르 주마에게 자리를 내주는 경기가 많아지며 첼시에서의 입지가 많이 흔들리고 있다. 출전하는 상대팀을 봐도 주마는 뉴캐슬, 스완지, 리버풀, 맨시티같은 굵직굵직한 팀을 상대로 출전하고 있고 케이힐은 브래드포드같은 약팀을 상대로 나오고 있다. 입장이 완전히 바뀐셈. 게다가 그나마 선발출전한 3부리그팀 브래드포드와의 경기에서 EPL 8년차 30살 베테랑 수비수라고 믿기지않는 최악의 수비리드를 보여주며 FA컵 탈락에 크게 일조했다(...)

6. 플레이 스타일

키가 큰 센터백이지만 생각보다 몸무게가 적어 피지컬이 월등한 선수는 아니다. 물론 키 자체가 크기 때문에 공중볼 장악 능력이 좋으며, 슈팅도 준수하다. 세트 피스 상황에서는 또 하나의 공격 옵션. 무엇보다 케이힐은 뛰어난 볼 커팅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인데, 공격수와의 경합에서 속도에서 밀리지만 않으면 십중팔구 볼을 다 태클 등으로 커팅한다. 그 밖에도 크로스, 패스 등에서도 적극적으로 몸을 날리면서 수비하는 모습이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테리로부터 걸레수비를 전수받았다 수비수이지만 득점력은 미드필더일 정도로 상당히 공격적인 선수다.

단점으로는 느린 발, 그리고 수비 라인 조율 능력의 부족이 꼽힌다. 원래 센터백치고 빠른 선수가 얼마나 있겠냐만 케이힐은 좀 느린 편이라 우선 자리를 잡거나 선수에게 미리 붙어있지 않으면 빠른 공격수들에게 많이 고전한다. 그리고 그 대인 마크도 생각만큼 잘 되는 편은 아니라 가끔씩 정줄 놓다가 공격수 놓치고 실점하는 장면도 많이 나온다. 존 테리가 나올 때는 테리가 지휘를 하기 때문에 큰 실수 없이 깔끔히 플레이하는 반면[7] 루이스-케이힐 조합은 두 선수 모두 커맨더형 수비수가 아니다보니 서로 따로 노는 듯한특히 루이스는 컨트롤 안하면 개판이지 하지만 11-12시즌 챔스 결승전에서는 루이스-케이힐 듀오가 최고의 수비력을 보여줬다 그 경기도 사실 뮌헨의 삽질이 더 컸다 플레이를 보이면서 12-13시즌 테리의 공백을 메꾸지 못하고 대량 실점한 첼시의 원흉이 되어버렸다. 결국 디 마테오가 이를 해결하지 못하고 짤린 뒤 라파엘 베니테즈는 이바노비치를 센터백으로 돌리고 다비드 루이스를 수미로 돌리는 선택을 했고 이것이 대박이 나면서[8] 어느 정도는 수비진이 안정화되었다. 현재 케이힐이 테리의 뒤를 이을 첼시의 센터백이다보니 팬들의 기대도 높은데 과연 테리 은퇴 전까지 얼마나 그의 통솔력을 흡수할 수 있을 지가 향후 첼시 수비진의 운명을 좌우한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다만, 14-15시즌의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면 테리의 후계자가 되기에는 한참 멀었다는것이 대부분의 의견. 게다가 케이힐이 이제는 더이상 성장하기 어려운 나이대에 접어든것을 고려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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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보스만 룰에 의해 케이힐이 자유롭게 이적 협상을 할 수 있었기 때문에 그 전에 팔았어야 했는데 볼턴 망했어요.
  • [2] 원정은 아니지만 순환식 결승 개최로 인해서 운 나쁘게도(...) 바이에른 뮌헨의 홈구장에서 경기를 하게 됐다.
  • [3] 특히 후반 막판 오스카 카르도소의 최후의 찬스를 필사적인 태클로 막아내지 않았더라면 첼시는 연장전으로 갔을 지도 모른다. 말 그대로 인생태클근데 인생경기가 워낙 많은 선수라.
  • [4] 케이힐보다 5살이나 많은 존 테리도 발이 느린것과 체력적으로 힘든건 똑같은데 완전히 대비되는 활약을 해주고 있는것을 보면 참으로 안습하다.
  • [5] 올 시즌, 위험한 태클 때문에 여러번 구설수에 올랐다.
  • [6] 지난시즌 케이힐이 프리미어리그 최고의 센터백으로 평가받을 수 있었던 것은 다비드 루이스가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루이스가 수비형 미드필더와 센터백을 번갈아가면서 출전하여 케이힐이 체력적으로 부담이 적었기 때문. 따라서 괜찮은 수비수가 영입되면 첼시 뿐만 아니라 케이힐에게도 플러스가 될 수 있다.
  • [7] 이는 루이스-테리 센터백 조합에서 루이스가 기복없이 잘 하던 것과 동일한 이유다.
  • [8] 물론 루이스가 수미 치고 수비는 안습이긴 하나 적어도 볼 배급은 존 오비 미켈보다는 나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