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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민

last modified: 2015-09-26 12:28:36 Contributors


이름 강철민(姜哲敏)
생년월일 1979년 7월 22일
출신지 전라남도 순천시
포지션 투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1998년 해태 고졸우선지명
소속팀 KIA 타이거즈(2002~2009.4)
LG 트윈스(2009.4~2011.5)
한화 이글스(2013)

사이버 투수의 대명사

KIA 타이거즈 등번호 27번(2002~2007)
이호성(1990~2001) 강철민(2002~2007) 호세 리마(2008)
KIA 타이거즈 등번호 21번(2008)
이인철(2007) 강철민(2008) 정성철(2009~2010)
KIA 타이거즈 등번호 27번(2009)
호세 리마(2008) 강철민(2009) 김상현(2009~ )
LG 트윈스 등번호 26번(2009~2011)
김상현(2009) 강철민(2009~2011) 양승진(2011~ )
한화 이글스 등번호 41번(2013)[1]
최우석(2012) 강철민(2013) 엄태용(2013~ )
한화 이글스 등번호 46번(2013)
이영기(2012) 강철민(2013) 펠릭스 피에(2014~ )

Contents

1. 소개
2. 프로 이전
3. 프로 경력
3.1. KIA 타이거즈 시절
3.2. LG 트윈스 시절
3.3. 한화 이글스 시절
4. 은퇴 이후

1. 소개

대한민국의 前 야구 선수, 사이버투수.

2. 프로 이전

효천고 출신으로, 고교 시절에는 조용준과 함께 활약했다. 이후 1998년 해태 타이거즈의 고졸우선지명을 받지만 한양대학교에 입학했다. 같은 해에 지명된 선수로는 최희섭[2], 이현곤 등이 있다. 대학 시절 리그 최우수 선수, MVP 등을 수상했고 그 활약 덕분에 방콕 아시안게임 대표로 선발되어 금메달을 획득, 병역을 면제받기도 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무려 5억 원의 계약금을 받고 자신을 지명했던 KIA 타이거즈에 입단한다.

3. 프로 경력

3.1. KIA 타이거즈 시절

그러나 프로 입단 후 잦은 부상과 수술의 연속으로 별 활약을 못 보였다. KIA에서 5년간 1군 117경기 등판에 그치고 성적도 두드러지지 않았다. 2006년에 그나마 포텐이 터지는 듯 싶었지만 얼마 뛰지도 못하고 부상으로 드러누웠고, 그나마도 2007, 2008년은 1군 경기에 나오지도 못했다. 덕분에 호세 리마에게 등번호를 빼앗기기도 했다.[3]

3.2. LG 트윈스 시절

2009년 4월 19일 KIA가 김상현박기남을 받는 2:1 트레이드로 강철민은 LG 트윈스로 이적됐다. 김상현이 이적 첫 해 홈런왕과 MVP[4]를 차지했고, 대수비 요원으로 활약하던 박기남도 2010 시즌 들어 김상현의 부상 공백을 메우며 커리어 통산 최고의 활약을 펼치는 가운데, 강철민은 2010년 7월 18일 대구 삼성전에서야 1군에서 얼굴을 볼 수 있었다. 본격적으로 사랑해요 LG가 울려퍼지게 된 촉매.

마지막으로 1군에 등판했던 때가 2006년 6월 7일인데, 계산해보면 무려 49개월만의 등판.(…) 그 정도로 1군 무대에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못했다. 이 때문에 얼굴 보기가 정말 힘들어 실존인물인지 의심된다는 이유로 사이버 투수라고 불렸다.

190cm가 넘는 장신이다 보니 KIA에 있을 시절 주로 상체로만 투구를 했다고 한다. 2군에서 투구 폼 자체를 뜯어고쳤으며, 2010년 7월 4일 경찰청과의 경기에서 5이닝 3실점 2자책으로 LG 유니폼을 입고 첫승을 거두었다. 참고로 상대 패전 투수는 당시 복무 중이었던 우규민이었다.

7월 18일 삼성전에서 처음으로 등판하며 자신의 존재를 알렸으며 150km/h에 육박하는 속구로 4이닝 1피안타 1피홈런 1실점을 기록하며 비교적 준수한 모습을 보였지만, 박석민에게 홈런을 얻어맞고 차우찬의 데뷔 첫 완봉승의 희생양이 되며 패전 투수가 되었다. 하지만 2010 시즌 막판 체력 저하로 출전하지 못했으며, 구속이 떨어지는 모습을 보이며 2군으로 내려갔다. 그리고 2011년 다시 도진 어깨 부상으로 5월 20일 웨이버 공시되어 방출되면서 정말로 사이버 투수로 거듭나고 말았다.

3.3. 한화 이글스 시절

헌데 2012년 10월 15일, 뜬금없이 신고선수로 한화 이글스로 입단이 결정되었다.
탈쥐효과 vs. 입칰효과?[5]

그러나 구속을 회복하지 못해 사이버 투수가 되고 말았다. 2013년 한화의 투수난 덕에 한 번쯤 1군 콜업이 될 법하지만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한화에서서도 사이버 투수

결국 재활군에서도 구속은 물론 기량을 회복하지 못한 채 6월 27일 은퇴를 선언한 외야수 오재필과 함께 방출되었다. 고질적인 부상에 나이도 적지는 않은 편이라 사실상 은퇴 수순을 밟게 되었다. 시즌 후 보류명단 제외자에는 없는 것으로 보아 신고선수 계약을 해지한 듯.

4. 은퇴 이후

광주일보 김여울 기자 트위터를 통해 2013년 12월 6일 열린 타이거즈 OB 모임에 참석했음이 밝혀졌다. 광주 진흥고 코치로 부임 중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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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입단 직후의 배번은 41번이었으나, 시즌 시작 전에 엄태용에게 넘기고 46번으로 변경했다.
  • [2] 1차 지명이지었만 중도에 자격 정지를 당해 지명이 취소되었다. KIA 입단은 미국 진출과 복귀 후 해외파 특별 드래프트를 통해 이뤄졌다.
  • [3] 참고로 강탈(…)당한 27번의 전 주인은 김봉연이호성일 정도로 27번은 타이거즈에서 꽤 비중있는 번호였다. 그런데 2008년에 그 번호의 전 주인대형사고를 쳐서 방송 3사 그랜드슬램을 달성하는 바람에 망했어요. 그런데 어쩌면 실은 강철민이 등번호를 빼앗긴 게 아니라, 그 번호의 전 주인 때문에 일부러 그 번호를 안 쓰고 용병에게 주었을지도 모른다. 이호성 살인사건이 이슈가 되었던 때는 2008년 2~3월이다. 무튼 김봉연의 번호라서 그런지 강철민은 어쨌든 2009년에 도로 27번을 돌려받았다.
  • [4] 트레이드된 당해에 MVP를 수상한 것은 KBO 사상 최초다.
  • [5] 한화 이글스LG 트윈스 선수 영입을 엄청나게 했지만 2014년까지 성과가 처참한 수준이다. 예를 들면 추승우, 재현(투수), 김준호, 이학준, 김광수, 송신영. 추승우, 김재현은 반대 급부는 전혀 없이 영입한 것이어서 성과 운운하기에는 좀 어려움이 있기는 했고 강철민도 마찬가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