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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봉규

last modified: 2015-04-10 17:24:23 Contributors


2011년 한국시리즈 5차전에서 결승홈런을 친 후.

삼성 라이온즈 No.24
강봉규(康奉珪)
생년월일 1978년 1월 12일
출신지 부산광역시
학력 부천초-개성중-경남고-고려대
포지션 외야수, 1루수[1]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1996년 2차지명 7라운드
(전체 57번, OB 베어스)
소속팀 두산 베어스(2000~2005)
삼성 라이온즈(2006~ )
응원가 애프터 스쿨 - 잊었나[2][3]

2009년 한국프로야구 페어플레이상
윤석민(KIA 타이거즈) 강봉규(삼성 라이온즈) 양현종(KIA 타이거즈)

두산 베어스 등번호 24번(2000~2005)
강봉규(2000~2005) 강동우(2006)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1번(2006)
강동우(2000~2005) 강봉규(2006) 윤성환(2007~)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24번(2007~)
최용호(2006) 강봉규(2007~) 현역

삼성 라이온즈 역대 주장
박진만 강봉규(2010)[4] 진갑용

Contents

1. 소개
2. 선수 생활
2.1. 2009 시즌
2.2. 2010 시즌
2.3. 2011 시즌
2.4. 2012 시즌
2.5. 2013 시즌
2.6. 2014 시즌
2.7. 2015 시즌
3. 이야깃거리
4. 연도별 성적

1. 소개

삼성 라이온즈의 외야수, 등번호는 24번이지만 2006년에는 1번을 단 적이 있다. 1번을 단 적은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삼성의 1번라인에 끼어들지 않는 이유가 두산 베어스 시절때부터 24번에 대한 이미지가 강했기 때문이라고 한다.[5]

기본적인 포지션은 좌익수이나 1루수도 겸한 적이 있다.

우승경력은 2001년 두산 시절, 2006년, 2011년 삼성에서 했다.

여담으로 삼성 외야수 중 몇 안되는 우타자이다. 웬만한 외야수들이 전부 좌타자이기 때문에 강봉규의 희귀성(?)이 부각되는 부분.

2. 선수 생활

경남고, 고려대 재학 시절 3루수에 4번타자로 활약했으며 고려대 재학 시절 콕 아시안 게임 대표팀에 뽑혀 병역특례를 받았다. 아마추어 시절에 상당히 좋은 기량의 3루수로 인정받았다. 경남고 시절에는 투수로도 활약했으나 대학 진학 후 타자로 정착했다. 박재홍과 같은 경우.

프로에 데뷔하자 마자 삼진을 당하는 굴욕을 당했다. 또한 하필이면 지명받은 팀인 두산 베어스의 3루수가 국가대표 3루수인 김동주였던지라, 이 때문에 기회를 얻지 못하고 외야로 전향해 1,2군을 나도는 생활이 계속되었다.

2006년 시즌 전에 김창희와 함께 강동우와 맞트레이드로 인해 삼성 라이온즈로 이적했다. 김창희와는 두산으로 이적한 뒤에 한솥밥을 먹기 시작했으며 친한 선후배 사이. 2009 시즌 종료 뒤 김창희가 은퇴한 뒤로는 홀로서기에 서있다.

두산시절에는 비중이 없었으나 삼성으로 이적하고 와서는 비중이 늘었다. 이적 첫해 류현진을 상대로 홈런을 친 후로는 좌완투수 상대로 출장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2009 시즌 김상수에게 응원가를 빼앗겼지만 정작 김상수보다 타석에 들어서는 횟수가 더 많다. 흠좀무...라기 보다는 김상수의 간염으로 인해 2군행으로 오히려 타석에 있는 비중이 늘어 났다. 그리고 2010 시즌에는 노라조의 고등어를 응원가로 정했다고….

2.1. 2009 시즌

2009년 6월 28일 현재 타율 0.320으로 팀내 안타 1위를 기록하며 3번타자로 맹활약하고 있다. 한 때 양준혁과 함께 팀내 둘뿐인 3할타자로서 팀 타선에 없어서는 안될 존재로 부각되었으며 양준혁이 부상으로 전력에서 이탈하고 나선 완전히 개화하여 삼성의 신진 타자 3인방과 함께 막강한 폭풍 타선을 구축했다.

마침내 2009 시즌에 19홈런을 넘기면서 데뷔 후 9년 동안 친 18홈런을 한 시즌 만에 추월했다.

그리고 9월 25일, 20-20 클럽에 가입했다. 신명철과 함께 한 시즌에 한 팀에서 두 명의 20홈런-20도루가 나온 것. 동갑내기 신명철과 함께 화려하게 커리어 하이를 찍었다. 원래는 김창희와 파트너였지만 2009 시즌에는 신명철과 쌍두마차 중 파트너가 되었다.

불암콩콩코믹스의 영향 탓인지 강쩌리라는 별명이 튀어나온적도 있다. 실제로 상당한 2군 무명 쩌리 생활을 극복하고 2009년도 골든글러브 수상도 유력시되었던 인간승리의 선수. 거기에 성실함과 순박한 인간성까지... 그 덕에 작년부터 꾸준히 '봉느님'으로 불렸다.

2.2. 2010 시즌

2009년의 활약까지 더해져 2010년도 새 주장을 역임하게 되었다. 그 덕에 봉주장이라는 새로운 별명이 생겼다. 그리고 시즌초 추위를 막기 위해 복면을 하고 수비를 하다 실책을 해서 강복면이라고도 불린다.

2010 시즌에는 태평양 존으로 바뀐 스트라이크 존에 적응하지 못해 애먹었다.[6] 2010년 3월 31일 광주 기아전에서는 도저히 일반 상식으로는 납득되지 않는 스트라이크 존에 의한 삼진을 당하고 덕아웃에 헬멧을 벗어 던지는등 심판에게 강하게 어필, 2010 시즌 첫 퇴장을 당했다. 여태껏 한번도 항의를 하지 않았을 정도로 순한 성품인 강봉규가 퇴장을 당했을 정도.

견제도 많이 받고 해서 타격이 엉성해져서 2010 시즌 초중반 결국 2군행. 이후 복귀하였으나 역시나 계속 부진한 모습을 보였다.

양준혁의 은퇴건과 관련하여, 엠엘비파크의 삼성팬들에게 선동열과 함께 죽어라 까였다. 양준혁과 포지션 이해 관계에 있는 다른 타자들이 나이가 젊다거나, 성적이 좋다는 이유로 덜까인데 비해, 강봉규는 젊지 않은 나이에, 성적도 최악이었던 만큼 폭풍처럼 까였다. 그런데 못해서 까이는 거야 할말없지만 양준혁과 강봉규는 별 상관이 없다. 양준혁의 자리를 차지한 것은 조영훈과 3루에서 지명으로 밀려난 박석민이다(…).

강봉규는 두산 베어스와의 2010년 플레이오프에서 7타수 1안타 1득점, 타율&장타율&출루율 .143를 기록했고, 팀은 시리즈 전적 3승 2패로 한국시리즈에 진출했다.

강봉규는 SK 와이번스와의 2010년 한국시리즈에서 5타수 2안타 1홈런 1볼넷 1타점 2득점, 타율 .400, 장타율 1.000, 출루율 .500을 기록했고, 팀은 시리즈 전적 4패로 준우승에 그쳤다.

강봉규는 2010년 포스트시즌에서 12타수 3안타 1홈런 1볼넷 1타점 3득점, 타율 .250, 장타율 .500, 출루율 .308를 기록했다.

2.3. 2011 시즌

2011년 3월 23일 시범경기 중 김상수와 충돌로 왼쪽 엄지 골절로 7월 12일에 1군에 올라왔다. 하지만 강봉규가 올라오기 전까지 모두 그를 잊고 있었다. 안습

SK 와이번스와의 2011년 한국시리즈에서 16타수 5안타 1홈런 1볼넷 2사구(死球) 1도루 1타점 3득점 타율 .313, 장타율 .500, 출루율 .421을 기록하여 삼성의 한국시리즈 우승에 기여했다. 특히 잠실 야구장에서 열린 한국시리즈 5차전에서 SK의 선발 투수 고든을 상대로 4회말 1사 상황에서 결승 솔로 홈런을 쳐서 팀의 0:1 승리와 팀의 우승을 확정지었고 5차전 MVP로 뽑혔다.

2.4. 2012 시즌

4월엔 주춤했으나 5월부터 방망이가 조금씩 터지기 시작. 이따금씩 홈런도 터뜨리며 외야진의 한 축을 담당하였었다. 다만 사실상 외야~지명타자 라인이 배영섭 - 정형식 - 박한이 - 최형우로 고정된 상황이라 좌투수 상대로 정형식이나 박한이를 대신해 나오는 정도로 출전하였는데....

조영훈KIA 타이거즈로 이적하고 채태인모상기는 부진에서 헤어나오질 못하는 상황에서 이승엽의 1루 백업이 없는 상황에서 1루수 백업으로 선택되었다. 처음 1루에 섰을때는 1루수의 기본적인 수비에서 실책을 하는 등 불안한 모습을 노출하였으나 점점 적응하며 훌륭한 1루수 백업 역할을 수행했다.

팀이 시리즈 전적 2승 1패로 앞선 10월 29일 문학 야구장에서 SK 와이번스와의 2012년 한국시리즈에 4차전에 상대 선발 투수인 좌완 김광현을 상대로 선발 좌익수 겸 6번타자로 출장했지만, 2타수 무안타를 기록했고 6회초에 대타 정형식으로 교체되었다.
이날 팀은 스코어 1:4로 패했다.

강봉규는 2012년 한국시리즈에서 2, 3차전은 대타, 4차전은 선발 좌익수 겸 6번타자로 출장하여 4타수 무안타, 타율&장타율&출루율 0을 기록했고, 팀은 시리즈 전적 4승 2패로 우승하여 2년 연속 페넌트레이스&한국시리즈 우승을 달성했다.

2.5. 2013 시즌

시즌이 시작하기도 전에 오른쪽 어깨와 손목부상으로 인해 재활군에서 시즌을 시작하게 되었다. 시즌 초반에 삼성이 2012년처럼또 부진하자 수많은 삼팬들이 강봉규를 찾으러 다녔을 정도. 심지어 채태인이 선발 출장한다는 소리에도 반응이 민감하여 제발 채태인 넣지 말고 강봉규 1루 세우라는 말도 많이 돌았었으나, 채태인이 2013년 초반 각성한 모습을 보이며 공수에서 맹활약하는 모습을 보이자 자연히 묻혔다.
4월 30일부터 2군 경기에 출장하기 시작했고, 5월 23일 2군으로 내려간 채태인을 대신해서 1군으로 올라왔다. 그리고 5월 26일까지 9타석 무안타 행진 중(…)이었으나 5월 30일 SK와의 경기에서 1회초 승부에 쐐기를 박는 좌중간 2루타를 기록함으로서 본인의 시즌 첫 안타, 첫 타점을 기록하였다. 그리고 다시 6타석 무안타를 기록하였고 6월 2일에 다시 2군으로 내려갔다.
8월 20일 채태인이 어깨 통증으로 2군으로 내려가면서 대신 1군으로 올라왔다.

2.6. 2014 시즌

윤성환, 안지만 등과 계약을 매듭짓지 못하면서 스프링캠프에 따라가지 않게 되었다. 근데 두 사람 때문에 기사나 팬들이나 언급을 거의 안하는 상황이다. 안습.
# 기사에 의하면 구단과 플레잉코치냐 현역이냐의 문제로 아직 미계약인 상황이었다. 일단 1월 23일 자 기사에 의하면 5천만원 삭감된 1억 원에 재계약을 체결했다고 한다. 어깨 통증 탓에 스프링캠프는 못 가고 국내에 남아 재활훈련을 하고 있다고 한다.

정규시즌 개막 후 2군 경기에도 안 나왔는데, 4월 15일에 오른쪽 팔꿈치 뼛조각 제거 수술을 받았다고 한다.#

경기에 출장하지 못해 시즌 후 방출설이 나돌기도 했지만, 팀에 잔류하였고 15년 1군 스프링캠프에 합류했다.

2.7. 2015 시즌

채태인이 부상을 당한 공백 + 1군 엔트리 1명 확대 메리트를 입어 우타자 대타 요원으로 엔트리 한 자리에 합류했다. 간혹 가다 구자욱이 수비가 불안한 면이 있어 몇몇 팬들은 강봉규를 1루 세우자는 이야기도 하고 있는 중.

4월 9일 롯데 자이언츠전에서 팬들의 바람대로 구자욱이 빠지고 강봉규가 1루수로 선발 출장했는데, 수비는 그럭저럭했지만 타석에서는 완전히 빠지는 공에 스윙하면서 삼진만 2번 당했다. 결국 4월 10일 채태인이 복귀하면서 대신 2군으로 내려갔다.

3. 이야깃거리

정준하의 매니저였던 최종훈과 닮았다. 그래서 한때 별명이 강코디(…).

2010년 12월 26일 본인의 팬과 결혼했으며, 2013년 1월 2일 득녀했다.

4. 연도별 성적

역대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2000두산 베어스 1 1 .000 0 0 0 0 0 0 0
2001 64 89 .236 21 7 1 2 11 16 2
2002 93 160 .250 40 6 1 5 25 30 6
2003 6 13 .231 3 0 0 1 3 3 1
2004 40 72 .236 17 2 1 1 5 14 2
2005 48 102 .235 24 3 1 1 10 12 2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2006삼성 라이온즈 87 128 .234 30 6 1 4 16 16 4
2007 83 142 .282 40 9 1 1 13 20 4
2008 81 134 .276 37 8 0 3 14 27 3
2009 126 449 .310 139 24 2 20 78 89 20
2010 89 232 .237 55 12 0 4 26 38 8
2011 52 146 .267 39 7 1 1 18 14 3
2012 102 235 .255 60 10 1 6 38 30 5
2013 32 82 .207 17 5 0 0 5 11 3
통산 904 1985 .263 522 99 10 49 262 320 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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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2012년부터 이승엽의 백업으로 1루를 보게 되었다. 근데 시즌초만 되면 귀신같이 나타나는 채태인
  • [2] 빛과 그림자 OST. 강~봉규안타 강~봉규안타 최~강삼성 강봉규 안타 로 부른다.
  • [3] 여담이지만 김상수에게 전에 썼던 응원가를 뺏긴 적이 있다(...)
  • [4] 강봉규가 부진해 2군에 내려간 동안에 진갑용이 임시주장을 맡기도 했다.
  • [5] 삼성의 1번라인은 황규봉-류중일-강동우-윤성환
  • [6] 거의 1980년대 수준인 이 일관성 없는 태평양 스트라이크존은 역대 KBO 정책중 손꼽히는 병크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