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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귀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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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강귀태(姜貴太)
생년월일 1979년 8월 12일
국적 대한민국
출신학교 동산고-동국대학교
포지션 포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1998년 고졸 우선지명 (현대 유니콘스)[1][2]
소속팀 현대 유니콘스(2002~2007)
넥센 히어로즈(2008~2012)
KIA 타이거즈(2013)
응원가 복음성가 '예수님 찬양'[3]

현대 유니콘스 등번호 12번(2002~2007)
- 강귀태(2002~2007) -
넥센 히어로즈 등번호 12번(2008~2009)
- 강귀태(2008~2009) 유한준(2010)
넥센 히어로즈 등번호 24번(2010)
클리프 브룸바(2008~2009) 강귀태(2010) 박정준(2011~2012)
넥센 히어로즈 등번호 12번(2011~2012)
유한준(2010) 강귀태(2011~2012) 박헌도(2013)
KIA 타이거즈 등번호 24번(2013)
전은석(2012) 강귀태(2013) 김다원(2014~)

강커태 THE Record Breaker(기록파괴자)

세계 최초의 예능형 포수

강커트

Contents

1. 개요
2. 선수 생활
2.1. 현대 유니콘스 시절
2.2. 넥센 히어로즈 시절
2.3. KIA 타이거즈 시절
3. 지도자 생활
4. 플레이 스타일
5. 기록종결자
6. 기타


1. 개요

전 넥센 히어로즈의 포수.
동산고, 동국대학교를 졸업하고 현대 유니콘스에 입단했다.

2. 선수 생활

2.1. 현대 유니콘스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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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산고와 동국대학교 시절 프로급의 장타력을 뽐내며 차세대 공격형 포수로 주목받았다. 이런 기대속에 2억 1000만원이라는 거액의 계약금을 받고 현대 유니콘스에 입단한다. 입단 첫해인 2002년에는 박경완의 백업포수로 74경기에 출전, 타율 0.272의 준수한 타격감을 보이며 프로에 안착했다.

다음해인 2003년 박경완이 SK로 이적하자, 시범경기에 이어 개막전 주전포수로 출전하면서 확고한 주전으로 자리잡는 듯이 보였다. 하지만 개막 2경기만에 부상으로 낙마하였고 그 자리는 강귀태의 백업용으로 영입되었던 김동수가 차지한다. 그 후 김동수가 완전히 부활하면서, 부상이 완쾌된 후에도 김동수의 백업으로 만족해야 했다.

사실 더 많은 기회를 받을 수 있었음에도 한번 주전으로 낙점한 선수에게 무한애정을 보여주는 당시 김재박 현대 감독의 스타일 탓에 주전으로 자리잡지 못한 면이 있다. 또 중이염, 팔꿈치 인대 수술, 척추 질환 등으로 4급 판정을 3번 받아 병역면제가 되었을 정도로 잦은 부상에 시달리면서 실력이 정체되어 버렸다.

2.2. 넥센 히어로즈 시절

2008년 현대가 히어로즈로 바뀌고 고액연봉을 받는 베테랑들의 연봉을 가차없이 깎으며 강제적으로 세대교체를 단행하게 되면서 김동수를 밀어내고 주전포수로 낙점되었다. 하지만 잦은 부상으로 인해 타격 수비 양면에서 이미 폼이 떨어질 대로 떨어진 상태여서 대단한 활약은 보이지 못하였고 오히려 잦은 실수와 미숙한 수비로 많은 비판을 받게 된다. 하지만 팀에 그나마 강귀태만큼의 경험을 가진 포수가 드물었고 또 김시진 감독이 가장 신임하고 있기에 주전 포수의 자리를 지킬 수 있었다. 무엇보다 허준이나 유선정같은 다른 포수들도 고만고만한 수비에 1할대 타격으로 강귀태를 밀어내지 못했다. 구단 입장에서는 정말이지 답이 없는 상황.

그러나 11시즌 부상으로 자리를 비운 사이 신고선수로 입단한 허도환이 공수의 안정감을 선보이면서 주전포수로 자리잡았다. 거기에 시즌 종료후 FA자격을 포기하고 나선 연봉협상 과정에서 프런트와 충돌하면서 불화설이 흘러나왔다.[4] 12시즌에는 시즌 초반 몇경기 나오다가 424 대첩에서 불성실한 플레이로 코칭스탭의 눈밖에 나면서 2군 붙박이가 되었다. 심지어 5월 들어서 허도환이 대상포진으로 빠지게 되자 넥센은 2군 세이브왕 전유수를 주면서까지 급히 SK에서 최경철을 데려오면서도 강귀태는 기용하지 않았다. 결국 12시즌 종료 후 포수를 포기하고 지명타자 겸 백업 1루수로 전향하라는 신임 염경엽 감독의 제안을 거절하고 스스로 방출을 선택하였다.

2.3. KIA 타이거즈 시절

이후 KIA 2군이 마무리 훈련을 하던 경남 남해에서 목격되었다. 실제 KIA 타이거즈신고선수로 입단했다는 것이 밝혀졌다. 11월 17일 오키나와 1군 마무리 캠프에 합류하였다.

스프링캠프를 거치면서 연봉 7,000만원의 정규 선수로 등록하였고, 시범경기부터 투입되기 시작했다. 시범경기에서는 백업 포수와 지명타자로 출전. 이후 퓨처스리그에서 꾸준히 지명타자로 출전했다. 어차피 이럴꺼면 넥센에선 왜 나간 건지

그러나 2013년 6월 이후 KIA 타이거즈 홈페이지 선수 명단에서 사라졌다. 비슷한 시기에 사라진 송산은 부상으로 은퇴를 선언하고 에이전트로 전업했으며, 강귀태는 스스로 팀을 떠났다는 이야기가 인터넷에 돌고 있다. 홍희정의 베이스볼 다이어리에 의하면 은퇴를 선언한 것으로 밝혀졌다.

3. 지도자 생활

은퇴 후 공주중학교에서 코치 생활을 시작한 듯 하나.. 심각한 문제를 일으키고 쫓겨난 모양이다.

위 기사에서는 35세 강모 코치라고 나오는데, 2014년 기준으로 강씨 성을 가진 35세 선수면 강귀태가 유력한 상황. 만일 저 강 모 코치가 강귀태인게 사실이면 지도자로서는 자격미달이며, 앞으로 고교야구는 물론이고 프로야구판에서조차 코치 활동을 할 수 있는지 의문이 든다. 박철순이나 김성한처럼 구타로 물의를 일으켰던 전직 야구선수들의 선례를 감안하면, 그가 현장에 돌아와서 야구지도로 생계로 꾸려나가는 것은 영영 불가능해보인다.

4. 플레이 스타일

과거 동산고, 동국대 시절 무시무시한 장타력을 뽐내었던 과거 때문인지 매 타석마다 풀스윙을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정작 프로 통산 홈런은 30개가 전부. 하지만 장타력이나 치는 재능 자체는 있었기 때문에 현대 시절에는 대타로도 자주 나왔으며 타수가 적긴 하지만 나름 괜찮은 성적을 올리기도 하였다.

하지만 포수로서의 모습은 빈말로도 좋다고 할 수 없는 수준으로 투수 리드부터 송구, 블로킹, 수비력 등 모든 면에서 부족함을 보였다. 특히 블로킹 능력은 프로 1군의 포수인지 의심을 하게 할 정도. 강귀태의 부족한 능력이 안 그래도 평균 연령이 낮고 경험이 미숙한 넥센 투수진의 발목을 잡는다는 비판이 많았다. 포수가 블로킹을 하지 못하면 투수는 브레이킹 볼(변화구) 구사에 부담을 느끼게 되어 제대로 구사하지 못하기 때문이다.[5]

5. 기록종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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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난히 여러 기록을 막아낸 적이 많다.
2007년 10월 3일 잠실에서 열렸던 두산 베어스와의 경기인데, 이 경기에서 두산의 외국인 투수인 다니엘 리오스는 9회 1아웃까지 단 한 명의 주자도 출루시키지 않고 있었다. 남은 타자도 하위타선의 끝인 8번과 9번이었으며 이 두 타자만 더 잡아내면 한국프로야구 역사상 최초의 퍼펙트 게임을 기록하는 상황.

모든 야구 팬들이 이 역사적인 대기록이 만들어지는 현장을 보기 위해 숨 죽이는 상황에서 8번 타자 강귀태가 타석에 들어섰다. 리오스의 공은 여전히 날카로웠고, 프로 데뷔 이래 최악의 시즌을 보내던 강귀태가 리오스의 공을 치리라 생각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하지만 강귀태는 리오스의 공을 잡아당겨 3유간을 뚫는 좌전 안타강커태슬램!를 만들어내며 리오스의 퍼펙트는 물론 노히트노런 마저 날려버렸다. 리오스는 이후 바로 강판되었고 덕아웃에서 그라운드를 향해 가운데 손가락을 세우는 무례한 행동을 했지만 이에 대해서는 별 문제 없이 넘어갔다. 그 대기록을 아깝게 날려버린 게 오죽 억울하고 분했으면... 이 날 강귀태는 자신의 이름이 주요 포털 사이트 검색순위 1위에 올랐다며 좋아했지만, 퍼펙트 게임의 현장을 목격하길 바랬던 많은 야구팬들은 강귀태를 원망하기도 했다.[6]

하지만, 그 다음 해 일본 프로야구 구단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에 입단한 리오스가 금지약물을 복용했다는 충격적인 사실이 드러나며, 당시 리오스의 퍼펙트 게임을 저지한 강귀태는 순식간에 약쟁이가 한국프로야구 최초의 대기록을 수립하는 것을 막아낸 위대한 영웅으로 칭송받게 되며, 도마 강귀태 열사라는 별명을 얻었다.[7] 여러 모로 강귀태 입장에서 리오스는 좋은 인연이라 할 수 있겠다. 이 때 리오스에게 한 명언이 바로 'Welcome to the KBO'. 물론 믿으면 골룸.

2010년 8월 26일, 류현진의 30경기 연속 퀄리티스타트 행진을 마감시켰다. 역시 기록 브레이커 7회말, 이미 3자책점을 기록하고 있었던 류현진에게 솔로홈런으로 팀의 4점째를 얻어내면서, 대기록을 멈추게 했다. 류현진 본인은 대기록 지속에 대한 중압감을 떨쳐버려서 후련하다는 입장이었지만, 강귀태는 동산고 8년 후배의 대기록을 멈추게 해서 너무도 미안하다며, 대전 원정 때 류현진에게 고기를 살 것이라고 했다고. 파산 확정

이하는 강귀태가 기록을 저지(?)한 투수들의 목록.

위 5번의 기록 저지는 모두 서술된 투수로부터 직접 안타나 홈런을 뽑아내 저지한 것이지만 마지막은 심수창이 승리 투수 요건을 갖추고 내려간 상황에서 구원 투수로 올라온 임찬규에게 동점 홈런을 뽑아내 저지한 것이다.

그가 부상으로 못나오는 동안 그의 학교 후배인 한화 이글스이양기가 그를 대신하여 주키치의 퍼펙트 게임을 저지하기도 하였다.

6.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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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고졸 당시 지명하고 팀에서 지명권을 보유한 상태로 대학에 진학했다. 이 때문에 지명시기와 입단시기가 4년 차이가 난다.
  • [2] 참고로 이 당시 같이 고졸우선지명을 받고 바로 입단한게 바로 1998시즌 신인왕 김수경이다.
  • [3] 날려버려라~ 날려버려라~ 날려버려라~ 강귀태~ 안타! x4
  • [4] 강귀태는 FA 신청을 하지 않은 만큼 그간의 팀 공헌도(?)를 주장하면서 그에 걸맞는 대우를 해줄 것을 요구했고, 프런트는 부상과 실력정체를 이유로 오히려 삭감을 주장했다고 한다. 구단 입장에선 허도환이란 대안이 마련된 상태라, 강귀태에 그다지 연연할 필요가 없다는 계산을 한것으로 보인다. 결국 연봉은 전년과 동일한 1억으로 동결되었다. 여기에 추가적으로 강귀태가 주전보장을 요구했지만, 구단이 일언지하에 거절했다는 카더라도 있다.
  • [5] 허도환이 2011시즌 하반기에 빠르게 1군에 자리잡을 수 있었던게, 바로 뛰어난 블로킹 능력 때문이다. 강귀태의 알까기를 몇년동안 보다가, 제구레기들의 온갖 괴랄한 공도 다 막아주는 허도환을 보니, 넥센팬들이 환호할 수밖에. 참고로 이 당시 허도환의 블로킹은 양상문 해설이 '리그 최고 수준'이라고 극찬할 정도였다.
  • [6] 실력도 없는게 매너까지 없다부터 시작해서 엄청 까댔다.
  • [7] 참고로 도마는 안중근 의사의 세례명이다.
  • [8] 이름을 잘못 보면, '강커태'로 보인다. [10]
  • [9] 하단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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