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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린샤

last modified: 2015-03-27 22:33:03 Contributo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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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마누에우 프란시스쿠 두스 산투스
(Manuel Francisco dos Santos)
생년월일 1933년 10월 28일
사망년월일 1983년 1월 20일
국적 브라질
출신지 리우데자네이루
포지션 측면 공격수
169cm
프로 입단 1953년 보타포구 FR 입단
소속팀 보타포구 FR(1953~1965)
SC 코린치안스(1966)
포르투게사 카리올라(1967)
아틀레티코 주니오르(1968)
CR 플라멩구(1968~1969)
올라리아 AA(1972)

많은 형제들 중의 누군가가, 쓸모없고 흉하게 생긴 새의 이름인 '가린샤'라는 이름을 그에게 지어주었다.
그가 축구를 시작했을 때, 의사들은 그에게 X표를 그었다. 소아마비에, 허기에 굶주리고, 유아 수준의 지능에, 척추는 S자로 휘고, 두 다리는 한쪽으로 휘었고, 절름발이 노새를 닮은 이 불쌍하고 비정상적인 젊은이는 절대로 운동선수가 될 수 없다는 진단을 내린 것이다.
그러나 그만한 우측 공격수는 지금까지 아무도 없었다. -에두아르도 갈레아노-

Pelé and Garrincha - Gods of Brazil
펠레와 가린샤 - 브라질의 신들
-BBC 다큐멘터리-

브라질 역사에 남을 크랙
브라질 역대 축구 선수들 중 펠레 다음 가는 레전드[1]

본명은 마누에우 프란시스쿠 두스 산투스(Manuel Francisco dos Santos).
별명인 가린샤(Garrincha)[2]는 '작은 '란 뜻이다.[3]

무수한 수퍼스타를 배출한 브라질 축구계에서도, 항상 펠레와 함께 맨 처음에 거론하는 인물이다. 자타가 공인하는 역대 최고급 드리블러.

이 사람의 업적을 간단히 적어보자면
1958년 스웨덴 월드컵 우승.
1962년 칠레 월드컵 우승+득점왕+MVP.[4]

가린샤는 리우데자네이루의 슬럼가에서 출생했다. 부친은 알콜 중독자였고, 가린샤는 정규 교육을 받지 못해서 까막눈이었다. 게다가 어릴적 소아마비를 겪었기 때문에 다리가 기형이었다. 오른쪽 다리는 안으로 굽고, 왼쪽 다리는 밖으로 굽은데다 오른쪽 다리보다 6cm 짧았다. 오죽 장애가 심했으면 의사는 보조장치를 달지 않으면 평생 휠체어 신세라고 진단했다.

가린샤의 다리. 왼쪽 다리가 짧은게 선명히 보인다.

그랬던 가린샤가 훗날 당대 최고의 축구 선수, 더구나 당대 세계 최고의 드리블러라는 칭호까지 획득했다. 드리블러로서의 능력은 역대 축구 선수들을 통틀어서도 마라도나, 메시 다음이라는 평을 듣는다. 글자 그대로 인간승리.

가린샤가 축구를 하면서 '누구도 막을 수 없는 악마의 드리블을 하는 절름발이가 있다'는 식의 소문이 돌았지만 사람들은 반신반의했다.

1953년 명문팀 보타포구 FR과 계약했고, 1965년까지 581경기 232골을 기록했다.
이 당시 보타포구에서 뛰다가 펠레가 산투스에 입단한 뒤로 둘은 그야말로 라이벌로써 경쟁을 펼쳤다고 하는데, 리그에서의 경쟁은 지금의 리오넬 메시크리스티아누 호날두를 생각하면 될 듯 하다.

그런데 두 신이 브라질 국대에서 만납니다. 상대는 망했어요...

가린샤가 프로 데뷔를 할 때 보타포구의 감독을 쫓아다니면서 엄청 귀찮게 했다고 한다. 하기야 8살짜리 지능을 소유한 IQ 33짜리가 거기서 뭘 할 수 있겠다고 생각할 감독이 어디 있겠는가? 귀찮아진 감독은 팀의 주전 레프트 백을 보내서 가린샤를 테스트하기로 했다. 사실 말이 테스트지 이건 "저 반푼이XX 다시는 못 돌아오게 안드로메다로 보내버리라고!!"라는 뜻이 더 정확할게다. 그런데 웬걸? 가린샤를 발라버리라고 내보냈던 레프트백은 오히려 가린샤에게 처참하게 씹어먹혀버렸고 감독은 결국 가린샤를 뽑을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이 레프트백이 무려 니우통 산토스였다.[5]

그리고 이 니우통 산토스가 가린샤를 프런트에 적극 추천했다. '같은 팀에서 뛰면 가린샤를 상대할 필요가 없으니까'.

1955년 처음 브라질 축구 국가대표팀에 뽑힌 뒤로 1966년까지 A매치 50경기 12골을 기록했다.

여담으로, 이 시기 브라질 국대는 가린샤와 펠레가 동시에 뛴 경기에선 불패였다.[6] 흠좀무

가린샤는 흔히 말하는 '볼이 발에 붙어다닌다'는 스타일로, 수비진을 농락하는 능력이 발군이었다. 경기 흐름이 교착상태에 빠진다 싶으면, 일순 수비가 몸개그 와르르 넘어지며 가린샤가 볼을 몰고 들어오는 식이었다. 장애 때문에 드리블 자세나 리듬이 여느 선수와 미묘하게 달라서, 수비수들은 무척 혼란스러웠다고 한다.[7] 특히 창의로운 축구보단 조직적인 축구를 중시하는 유럽의 수비수들은 가린샤를 상대하다가 넘어지기 일쑤였다.

게다가 가린샤는 드리블 말고도 킥 또한 뛰어났다. 윙어로서 양질의 크로스를 올렸고, 프리킥도 잘 찼다. [8] 이쯤 되면 수비수는 울고 싶어질 듯.

그런데 이게 끝이 아니다. 가린샤 택배 수취인이 펠레(...)

수비수의 악몽이다. 위에 분명히 양질의 크로스를 올리고 프리킥도 잘찬다고 되어있다. 드리블 못해도 크로스만 잘 줘도 위험한 판에...

그리고 1962년 월드컵에선 펠레가 부상을 입어 벤치 신세를 지는 바람에, 사실상 가린샤가 우승 시킨 것이나 다름 없다.

다만 가린샤는 양날의 검이라고 할 수 있었는데 장애로 인해 지능수준이 어린아이 수준에 멈춰서 복잡한 전술을 알지 못하고 그 천재적인 능력으로 그냥 공놀이를 즐겼기 때문이다.[9] 수비진과 키퍼를 제끼고 빈골대 앞에서 가만히 기다리다 수비진이 달려오자 그를 다시 제끼고 골을 넣는 등의 기행을 보이기도 하고 2골이나 넣으며 상대 수비진을 부수다가도 상대 수비수가 알짱거리는게 짜증나서 그를 발로 찼다가 퇴장 당하는 일[10]도 있었으니 브라질 국대를 뽑을 때 감독은 가린샤 선발로 많은 고민을 해야 했었다고 한다.

이런 화려했던 그라운드 안과는 달리 사생활은 암울했다.
절제 없는 성생활을 즐겼으며, 결혼과 이혼을 반복했고, 아내가 6명(...)에 자녀가 최소한(...) 14명이라고.[11] 그리고 은퇴후 불과 49세 나이로 알콜중독으로 인한 간경화로 사망했다.

가린샤의 범국민적인 인기 때문에 가린샤의 아내들은 팜므파탈, 가린샤는 순진한 축구 영웅이라는 이미지가 있지만 사실 꼭 그렇지만도 않다. 아내들 중에서도 대표적인 악녀로 꼽히는 2번째 부인 엘자가 가린샤와 이혼한 이유는 가린샤가 그녀를 마구 발로 찼었기 때문.

장애를 극복한 인간 승리의 표상이자, 축구선수로서 일생일대의 영광을 누렸고, 반면 불우했던 출생과 유소년기를 반영하듯 씁쓸한 최후를 맞이하는 등 축구계에서도 보기 드문 파란만장한 선수였다.

또한 세계 최고의 드리블러로서, 온갖 캐사기 유닛이 들끓는 브라질에서도 수십년째 '가린샤의 재림'이란 칭호를 받은 선수가 거의 없다는 점이 그 위대함을 말해준다.[12]

대한민국에선 한 때 듣보잡이었지만, 요즘은 인지도가 훨씬 올라갔다. 그래도 가린샤 클럽이란 찌라시 덕에 유명해진 면이 크다는 것은 안습.
가린샤 클럽이란, 가린샤가 월드컵 본선에서 2골을 넣고 결국 반칙을 저질러 레드카드를 받은 데서 유래했는데, 월드컵 본선에서 골을 넣고 퇴장당한 사람들을 장난스럽게 묶어 부르는 말이다. 정식 축구 용어는 아니다.

여담이지만 가린샤는 성생활이 위에 써 있듯이 '엄청나게' 문란했는데, 12살 때 염소에게 동정을 잃는 등 그 물건의 크기가 쥘리메 컵(=35cm)만 하다하고(...) 한번 하고나면 10분만에 다시 불끈불끈(......)해졌다고 한다.이 항목을 읽고 있는 수많은 남성들이 부러워하는 소리가 들린다.

브라질리아에 위치한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의 공식 경기장인 "이스타지우 마네 가린샤"(마네 가린샤 국립 경기장)는 바로 가린샤를 기리는 의미에서 이름을 지은 것이다. 여기서 3,4위전이 열렸는데, 벨루오리존치 대참사를 겪은 브라질 대표팀은 결국 네덜란드에게 3:0으로 패하며 4위에 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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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브라질의 축구 저변과, 브라질 출신의 수많은 레전드들을 생각해보면 가린샤의 위대함을 제대로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 [2] 브라질식 포르투갈어의 원어 발음으로 따지면 rr의 발음은 'ㄹ'발음이 아닌 'ㅎ'발음이 난다. 따라서 브라질 본토 발음으로 표기한다면 가린샤가 아닌 가힌샤가 맞는 발음이다. 하지만 이 페이지에서는 대한민국에서 흔히 쓰는 표기인 가린샤로 표기하겠다. 물론 가힌샤로도 들어올 수 있다.
  • [3] 일설에 따르면 가린샤란 이름이 작은 새라는 뜻이 아니라 새의 이름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이게 그 가린샤. 가린샤가 어렸을 때 친구들과 함께 새총으로 가린샤를 맞추는 놀이를 즐겼는데 그걸 엄청 잘했다고 한다. 그래서 별명이 가린샤가 됐다나...
  • [4] 월드컵 역사에서 득점왕, MVP, 우승을 모두 거머쥔 사람은 단 세명뿐이다. 가린샤, 1978년 아르헨티나 월드컵의 마리오 켐페스, 그리고 1982년 스페인 월드컵의 파울로 로시.
  • [5] 니우통 산토스는 월드컵 4회 출전(50, 54, 58, 62)하면서 2회(58, 62)를 우승한 경력을 가지고 있다. 참고로 월드컵에서 2회 우승한 선수가 축구 전체 역사에서 딱 20명밖에 안 된다. 브라질 올타임 팀을 꼽으면 반드시 들어갈 선수로 호베르투 카를로스보다 위면 위지 결코 아래가 아니다. 남미 올타임 베스트까지는 거의 확정이고 뽑는 사람에 따라서는 역대 올타임 베스트에도 넣을만한 선수이다.
  • [6] 가린샤가 뛰었던 마지막 경기가 1966년 월드컵 헝가리전이었고 거기서 패배한 게 가린샤의 유일한 A매치 패배기록이다. 펠레는 이전 경기였던 불가리아전에서 부상으로 아웃.
  • [7] 로베르토 바지오도 다리길이에 약간 차이가 있어서 드리블이 보통 선수들과 다른 미묘함이 있다고 한다. 물론 가린샤만큼은 아니지만.
  • [8] 1960년대 브라질 대표팀의 프리킥은 주로 지지, 펠레, 가린샤 이 3명이 도맡았다.
  • [9] 어쩌면 한평생 순수하게 즐겼기 때문에 천재가 된 것일 수도...
  • [10] 그게 바로 1962년 칠레 월드컵 4강전 경기였다. 상대는 개최국 칠레. 후반 38분에 칠레 수비수를 뒤에서 발로 차버렸고 퇴장당한다. 하지만 칠레 수비수들의 거칠었던 수비가 인정되었고 결승 상대국 체코슬로바키아의 가린샤 퇴장 철회 신청을 FIFA가 승인하여 가린샤는 결승에서 뛸 수 있었다. 이미 조별 예선에서 브라질을 만난 적이 있어서 브라질의 강함을 알고 있었겠지만 그들은 정정당당한 승부를 선택한 것이다. 게다가 당시 체코슬로바키아는 그 조별 예선 경기에서도 경기 도중 부상당한 펠레를 위해 매너 게임을 펼친 적도 있다. 오오 대인배 오오...
  • [11] 펠레의 자서전에서 24살 때 이미 자녀가 6명이라고 언급하는 내용이 있다.
  • [12] 1970년 멕시코 월드컵에서 전경기 득점과 우승을 동시에 거머쥔 레전드 윙어 자일징요(자이르지뉴)와 역시 동시대에 왼쪽 측면 공격수와 공격형 미드필더를 보았던 리벨리노(히벨리누) 정도를 제외하면 가린샤의 아성에 도전할 만한 브라질 출신 윙어는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이들조차 가린샤를 넘었다는 평가는 거의 나오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