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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네모토 도모아키

last modified: 2015-10-17 20:03:43 Contributors


응? 아니 이 분이 왜 일본에서?
여러분 낚이신거 아니죠?
이름 金本 知憲
생년월일 1968년 4월 3일
한국식 이름 김박성(金博成)[1], 김지헌(金知憲)
국적 일본
출신지 히로시마
포지션 좌익수
투타 우투좌타
프로입단 1991년 드래프트 4위
소속팀 히로시마 도요 카프 (1992~2002)
한신 타이거즈 (2003~2012)

2005년 일본프로야구 센트럴리그 MVP
가와카미 겐신
(주니치 드래곤즈)
가네모토 도모아키
(한신 타이거스)
후쿠도메 고스케
(주니치 드래곤즈)

Contents

1. 소개
2. 선수 시절
2.1. 연속 출장 기록
3. 은퇴


1. 소개

한신 타이거즈 소속의 전 야구선수이자 한신 타이거즈의 33대 감독. 등번호는 10번(히로시마) - 6번(한신). 한신 팬들로부터 아니키(형님)이라 불리며 존경받던 선수.
포지션은 외야수이며 재일교포 3세이다. 2001년에 일본 여성과 결혼하여, 지금은 일본인으로 귀화하였다.


2. 선수 시절


1992년 히로시마 도요 카프에 입단해 선수 생활을 시작하였으며, 노무라 켄지로, 가타 코이치, 에다 토모노리, 토 아키라 등과 함께 90년대 중후반 카프 '붉은 악마 타선'의 한 축을 이루었다[2]. 2003년 호시노 센이치의 강력한 권유로 FA를 통해 한신 타이거즈로 이적하였고[3], 이적한 뒤에는 2003, 2005년의 리그 우승에 공헌하는 등 2000년대 중반의 한신 상승세의 일등공신이 되면서 오랜 기간 한신의 중심타자로 활약했다.

통산 2539안타, 476홈런, 사이클링 히트 등 여러 모로 어마어마한 기록을 가지고 있다. 젊었을 적에는 발도 빨라서 두 자릿수 도루도 여러 번 기록했고, 트리플 쓰리(3할-30홈런-30도루)를 기록한 시즌(2000년)도 있다. 또한 2009년 4월에는 3연타석 홈런을 2번이나 기록하기도 했고, 1004타석 연속 무병살타 기록 등 은근히 희귀한 기록들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2.1. 연속 출장 기록

그 중에서도 가장 특기할 기록이라면 연속 출장 기록인데, 1999년 7월 21일부터 2010년 4월 17일까지 1492경기, 13686이닝 동안 기록한 전(全) 이닝 연속 무교체 출장 기록은 세계 기록이며 이 기록이 중단된 후에도 2011년 4월 15일까지 1766경기 연속 출장 기록을 달성했다. 이는 일본의 철인 기누가사 사치오에 이은 NPB 역대 2위. 이 기록을 달성하는 와중에 왼손에 골절상을 입은 적이 있는데, 그 상태에서도 출장해 오른손만으로 스윙해 2안타를 날렸다든가, 후두부에 데드볼을 맞고 쓰러졌다가 다음 타석에 홈런을 날렸다든가 하는 전적이 있다. 기록에 의하면 데드볼을 맞은 다음 타석에는 타율이 6할을 넘는다나.

호시노 센이치 전 감독 왈 '가네모토는 몸 상태가 완벽하지 않을 때 120%의 능력을 발휘한다.' 그야말로 정신이 육체를 초월하는 인간으로 여겨지는 선수였다. 아예 대놓고 '철인'으로 캐릭터화할 정도.

한 번은 시즌 중 부상을 입어 데이비드 베컴, 웨인 루니가 사용했던 산소캡슐을 친히 이용한 적도 있다고 한다. 그리곤 다시 무시무시한 활약을 펼쳤다는데…흠좀무

2010년에는 시즌 초기부터 어깨 부상으로 신음하며 제대로 공조차 던지지 못 하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고, 결국 4월 18일의 요코하마 베이스타즈전에 선발 출장하지 못 함으로서 99년 7월 21일부터 계속된 '연속 풀이닝 출장 기록'은 1492시합으로 끝나게 되었다. 김기태가 연속경기 출장을 이어가는 이유를 묻자 관중석을 가리키며 "난 저분들을 위해 뛸 의무가 있으며, 내가 해야 할 일을 하는 것 뿐이다" 라고 대답한 적이 있다.

일단 이 시합부터는 주로 대타로 출장하는 것으로 '연속 출장 기록'은 계속 이어갔다. 하지만 2010 시즌은 규정타석 미달. 규정타석 미달로 전 경기 출장한 사례는 NPB 역사상 최초라고. 결국 2011년 시즌이 개막한 지 3경기 만인 4월 15일에 연속 출장 기록은 중단되고 말았는데, 이날 주니치 드래곤즈와의 나고야 원정경기 8회초 2사 주자 1루 상황에서 대타로 출장했으나 1루 주자가 도루자를 당하면서 타석이 증발, 이어진 8회말에 수비에 들어가지 않고 그냥 빠지면서 기록상 출장하지 않은 것으로 처리되어 대기록에 마침표를 찍었다. 야구 규칙에서는 대타는 출루 또는 아웃으로 타격행위를 완료하거나 그렇지 않을 경우 수비수로 투입이 되어야 경기 출장이 인정된다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규칙의 빈틈을 탓하거나 도루하다 죽은 주자를 갈구지 않았고, 기록이 멈춘 것에 연연하지 않겠다고 인터뷰를 했으니 기록중단에 크게 미련을 가지지는 않는 듯하다.

사실 가네모토의 몸상태는 2009년 이후부터 엉망이었던 데다 2010년부터는 송구 자체가 안 될 정도로 어깨 상태가 심각했다. 레프트 앞에 떨어진 공을 잡아도 백홈은 커녕 고작 3루까지도 공을 던질 수 없어 유격수가 중계 플레이(…)를 해야 했을 정도(참고). 60%도 안되는 몸상태로 계속 연속출장을 시키는 것에 대해서 물론 대다수 팬들이야 "연속출장 끊기면 안돼!" 를 외쳤지만, 객관적으로 보는 소수의 팬들은 "이쯤에서 연속출장을 중단하고 수술한 뒤 확실히 재활해서 오래오래 선수생활 하는 방향으로 가자"는 말도 있었다. 물론 가네모토의 연속출장이 상징하는 그것이 너무 강했기에 적극적으로 표명 안 했을 뿐이지...

3. 은퇴


부진을 이어가던 도중 결국 2012년 9월, 긴급 기자회견을 갖고 드디어 이번 시즌을 끝으로 은퇴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당초 한신 타이거스에서 가네모토의 크고 아름다운 커리어와 2000년대 타이거스의 중흥기를 이끈 공로를 기리기 위하여 그의 등번호인 6번을 영구결번으로 지정하기로 했으나, 가네모토 본인이 고사하면서 일단은 준영구결번으로 지정됐다. 참고로 한신의 6번은 나름 의미있는 번호인데, 한신의 역사를 빛낸 교타자인 지타 타이라와 현 한신 감독인 와다 유타카가 썼던 번호이기도 하다. 한신 팬들의 심경은 철인의 은퇴가 아쉬우면서도 현재의 전력강화를 생각하면서 '드디어 사라졌구나'하는 안도감, 다른 팀의 팬들은 대선수의 은퇴를 축하하면서도 '한신의 구멍 No.1이 없어졌다'는 아쉬움이 교차했던 기묘한 은퇴. 하지만 한신에는 또다른 노장 선수가 질긴 선수생명을 이어나가고 있다...가 1년뒤에 같은 길을 갔다.

자기 몸관리에 철저하고 연속 출장 등의 세계 기록을 보유하고 있지만, 담배에 환장한 사람이기도 하다. 덕아웃에서 담배 피우다가 카메라에 제대로 잡히질 않나, '올해 담배를 끊어줬으면 하는 사람 No.1'으로 꼽히질 않나. 신은 불공평하다는 걸 제대로 보여준다. 자기 라커룸에 소주를 놓고 산다고 한다. 우리나라 사람의 눈에 낯익다는 걸 보면 진로 소주다. 박동희 기자의 리포트 어째 쿠도 키미야스와 비슷하다고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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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파워블로거 박동희와 재일한인 야구계의 거목인 한재우 옹과의 인터뷰에서 밝혀진 이름이다. 그 이전에는 '토모아키'의 한자 독음을 그대로 따 김지헌으로 통용됐었다. 참고로 어느 한신빠 번역가가 김지헌이란 이름을 예명으로 쓰려다 그만둔 적이 있다
  • [2] 여담으로 히로시마 도요 카프 시절에 선동열에게 엄청나게 강했다. 아니, 히로시마 타자들이 선동열한테 무척 강했다. 붉은 헬멧의 악마들.
  • [3] 가네모토는 후배들을 위해 FA잔류로 히로시마에 남는 길을 선택하려고 했지만, 금전적인 여유가 없는 히로시마는 전통적으로 FA 선언을 한 선수들을 잡지 않는 주의였다. 몇 년 후, 그를 동생같이 따르던 또다른 히로시마의 4번 타자가 가네모토 형님을 따라 FA로 한신에 오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