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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

last modified: 2018-11-12 17:18:51 Contributors

Contents

1. 돈이 없는 것
1.1. 가난과 빈곤
1.2. 지적, 정서적 빈곤
1.3. 사회복지 종사자 관련
1.4. 빈곤, 가난과 선량함은 상관관계가 있는가
1.5. 여담
1.6. 관련 항목
2. 기갑전기 드라고나의 등장인물
2.1. 참조



1. 돈이 없는 것

가난하다고 해서 외로움을 모르겠는가
너와 헤어져 돌아오는
눈쌓인 골목길에 새파랗게 달빛이 쏟아지는데
가난하다고 해서 두려움이 없겠는가
두 점을 치는 소리
방범대원의 호각소리 메밀묵 사려 소리에
눈을 뜨면 멀리 육중한 기계 굴러가는 소리
가난하다고 해서 그리움을 버렸겠는가
어머님 보고싶소 수없이 뇌어보지만
집뒤 감나무에 까치밥으로 하나 남았을
새빨간 감 바람소리에도 그려보지만
가난하다고 해서 사랑을 모르겠는가
내볼에 와닿던 네 입술의 뜨거움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속삭이던 네 숨결
돌아서던 내등뒤에 터지던 네울음
가난하다고 해서 왜 모르겠는가
가난하기 때문에 이것들을
이 모든 것들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 신경림, <가난한 사랑 노래>

이 없는 나는 천 채의 집 근처에 서서, 천 개의 식탁 옆에서 음식을 애타게 구했다.
- 월리엄 에즈워드

가난이야말로 가장 나쁜 종류의 폭력이다. - 마하트마 간디

절대로 놀림거리가 되어서 안되는 것이다.[1] 그러나 절대로 미화되어서도 안 된다.

가난艱難. 어렵다는 뜻의 단어인 한자어 간난에서 ㄴ이 탈락한 어형으로 알려져 있으며, 나중에는 "집(가)이 어렵다(난)"는 식으로 풀이하여 家難으로 쓰기도 하였다. 사전적 정의로는 생활이 넉넉하지 못함을 뜻한다.

인류 역사에서 가난의 시초를 문명의 발생 이후라고 보는 시각이 있으나, 문명 이전에 '원시부족단계'에서 '소비재의 부족으로 인한 고통'은 이미 존재했다. 기근도 광의적 의미에선 가난에 포함된다. 심지어는 네안데르탈인의 마지막 유골에서 영양실조가 보일 정도이니(문명 이전) 딱히 반론의 여지는 없을 듯.



현재까지 많은 사람들의 죽음고통에 책임이 있으며, 인류가 사회 구조를 제대로 개혁하지 않는 이상 절대 없어지지 않을 저주이다. 가난의 원인은 사업 실패, 대물림, 실업, 사기, 전쟁 등의 사회적 환경과 시대적 상황 등 가지각색이며 부자도 언제 가진 재산을 송두리째 잃고 가난한 사람이 될지 모른다. 또한 이 글을 읽는 당신이나 당신 주변의 사람도 가난한 상황에 처해 있을 수도 있으며 설령 그렇지 않더라도 언제 가난해질 지 모른다. 노인, 여성, 아동, 장애인과 같은 능률이 떨어지는 사회적 약자들의 경우 삶 자체를 위협할 만큼 심각한 문제이다.



사람 역시 생물인지라 먹고 살아야 하는 문제 앞에는 사랑이든 이성이고 통하지 않는다. 그간 세계사에서 성군이라고 칭해진 인물을 포함해 수많은 인류 지도자들이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지만 끝내 못하고 죽었다. 오죽하면 '나랏님도 가난은 구제하지 못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이다. 수많은 학자들과 정치인 또한 의 재분배, 기부 제도, 적절한 세금 조정 등을 통해 이 끔찍한 괴물을 퇴치하려고 노력해봤지만 어림 반푼어치도 없었다. 공산주의라는, 한때 세계를 양분하는 사상도 출현했으나 상대적 빈곤이 줄어든 대신 절대적 빈곤이 늘어난데다 관료의 부패화로 공산주의 국가 내에서도 정상적으로 실현되지 않았으며, 서방 국가들을 공산화하지 못하고 자체적으로 붕괴하면서 결국 실패했다. 인류 문명이 찬란한 발전을 이룬 21세기 지금 70억이 먹고도 남을, 풍부한 물자가 생산되는 지금도 해결되지 않는 것을 보면 가난의 원인이 과학 기술의 미비가 아닌 정치에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즉, 정경 체제에 근본적인 개혁이 가해지지 않는다면 인류가 망할 때까지 사라지지 않을 것이며, 선진국의 경우 절대적 빈곤은 어떻게 해결한다 쳐도 상대적 빈곤의 해결은 말 그대로 불가능에 가깝다. 이를 양극화라고 한다. 심지어는 공산주의 국가에서도 상대적 빈곤은 존재했을 정도니 말 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민생에 관심도 없던 정치인들이 선거철만 되면 표심잡기의 일환으로 길거리에 나와 서민의 심정, 서민의 음식이라는 궤변을 늘어놓는다. 이는 우리나라에서 특히 심하다. 무슨 벌칙음식 먹기 행사하는 것도 아니고...

1.1. 가난과 빈곤

이러한 심각한 문제인 '가난'을 공적인 영역에서 다룰 때는 빈곤이라는 표현을 주로 쓴다. 공적인 논의를 위해서는 빈곤을 정의하는 일이 중요한데, 보통 빈곤은 절대적 빈곤상대적 빈곤으로 구분한다.

절대적 빈곤은 최저생계비를 계산해서 그보다 소득이 적으면 빈곤한 계급(빈곤층)으로 구분하는 식이다. 즉 이 경우 빈곤한 계급으로 분류되는 사람은 기초적인 도 제대로 충족하지 못하는 사람. 당연히 최저생계비가 얼마인지를 두고 사람마다 의견이 다른데, 2010년 최저임금 상향 요구를 두고 경총이 근거로 제시한 최저생계비구성안의 식비가 820원인 것이 논란이 됐던 것이 그런 예이다.

상대적 빈곤은 '소득이 중위소득 대비 50% 미만인 가구' 같은 식으로 사회의 통상적인 부에 대비하여 소득이 일정 수준 이상 떨어지는 대상을 가리킨다. 빈곤의 정의를 이렇게 해놓으면 어떤 사회도 정도의 차이만 있지 일정 수준의 빈곤층을 가질 수밖에 없다. 실질적으로 빈곤율이 곧 불평등지수인 셈.

모든 가난이 정부만의 책임은 아니다. 다만 국가나 정부가 어느 정도 해결하는 데 나서야 되는 것은 분명하다. 이는 인도적인 문제, 인도주의에 관련된 것들, 이를테면 인간의 존엄성 문제, 인격, 인권 문제와 엮일 수 있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최소한도에 한해야 될 것이다. 인권에는 개인의 사유재산에 대한 , 재산권, 그리고 지식이나 정보에 관련된 지적 재산권 등이 있어서, 단지 부자라는 이유로, 잘 먹고 잘 산다는 이유로, 가난하지 않은 다른 사람의 권리를 일방적으로 침해하거나 박탈할 당위성은 없다.[2] 부자라는 이유로, 상대적으로 잘 산다는 이유로 일방적 양보를 강요당해서는 안된다. 이것은 인권 침해 문제, 침해 문제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스스로가 가난에서 벗어나려는 생각, 그런 각오가 없다면 1차적인 문제는 가난하게 사는 본인에게 있을 수도 있다. 한 사람이 가난에서 영원히 벗어나지 못하는 것을, 모두 전적으로 무조건 정부나 정치인, 사회의 탓으로만 돌리기는 힘들다.

사실 진짜로 심각한 건 바로 상대적 빈곤이라고 전 작성자가 써놓았겠지만 둘 다 심각한 문제이다 예를 들어 한국을 보면 절대적 빈곤 상태에 놓여 있는 사람은 적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1970년대 군사정권 시절 넘쳐나던 무허가 판자촌과 달동네를 지금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또한 양극화 항목에서 볼 수 있듯이 상대적 빈곤은 갈수록 심화되는데다 대물림 현상까지 벌어지고 있다. 그리고 사람은 다 같이 가난한 것은 참을 수 있지만 내가 가난하고 타인은 잘 살며, 그것도 사회적 환경 때문에 그렇다면 참지 못한다. 그러나 아프리카의 절대적 빈곤은 상상 그 이상이며 사람의 생명이 오락가락라는 문제고 기아와 더불어 정말 밑도끝도 없이 아무 의식주도 해결못하는 사람들도 많다. 오히려 극단적인 빈곤 국가는 안정된 반면 발전이 어느 정도 이뤄지고 양극화가 심화되는 국가에서 혼란이 벌어지는 것은 이 때문이다라고 전 작성자가 썼지만 사람들이 죽어가고, 뭐라 할 목소리조차 못내고 죽는사람들이 절대다수인 제 3세계의 무수한 나라들이 안정되어있을까?? 절대적 빈곤과 상대적 빈곤의 경중을 나누고 어떤게 더 심각하다 나누는 것 자체가 말이 안되는 것이다. 이윤 추구를 제 1 목적으로 삼는 오늘날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러한 경향이 더더욱 심화될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며, 국가의 주체인 국민이 절실한 문제 해결을 느끼고 장기적인 개혁 의지를 보이지 않는 한 가망은 없다.

1.2. 지적, 정서적 빈곤

물질적인 가난함이야 본인이 건강하다는 조건하에, 아르바이트를 하고 을 해서 을 벌면 해결이 된다. 그러나 지적, 정서적 가난, 궁핍함은 어떻게 쉽게 해결이 되지 않는다. 해결할 방법도 딱히 없다.

완벽한 해결까지는 어렵더라도 월급을 받거나 일당을 받는다면 그것으로 며칠치, 혹은 1개월 정도의 이나 이런저런 물질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의 , 정서적 가난 (궁핍)은 어떻게 하루아침에 좀처럼 쉽게 해결이 어렵다. 다른 사람이나 국가, 정부가 나서서 쉽게 해결해줄 수 있는 문제도 아니다. 시민단체들도 해결이 불가능하다. 스스로 지적 정서적 빈곤을 해결하려 하지 않는다면, 다른사람에 의한 강요는 일종의 정서적 폭력, 학대가 될 수 있다.

일례로 무교육상교육으로 학교를 다니는데도 시간에 딴짓을 하거나, 다른 이유로 엎드려 자는 학생들을 보자.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는 것이 우선일 것이다. 단순히 정신력 드립, 오력 드립은, 반감, 거부감만 불러올 뿐 문제 해결의 정답은 될 수 없다. 다만 중요한 것은 본인의 하려는 의지가 있어야 된다. 공부를 스스로 하고자 하는 의지가 없다면 아무리 좋은 여견, 환경이 제공되어도 어쩔 수 없다. 을 물가로 데려갈 수는 있어도 물을 억지로 먹일 수는 없다속담도 먼저 본인이 스스로 하려는 생각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우회적으로 돌려서 말한 것이다.

물질적인 빈곤은 각종 복지제도와 금전적 지원으로 해결이 가능하지만, 지적 정서적 빈곤과 이것을 해결할 마음이 없는 사람들이라면 지적, 정서적 빈곤은 쉽게 해결하기 힘들다. 스스로 자신의 정서적 빈곤함, 지적 빈곤함을 안다면 다행이지만 인간은, 정확하게 인간의 가치관은 생각처럼 쉽게 변하거나 바뀌지는 않는다. 그런 상태로 나이를 먹어간다면 더욱 해결하기 힘들다.

1.3. 사회복지 종사자 관련

가난 혹은 그 이하의 삶을 살수 밖에 없는 계층과 부딛치면서 실시간으로 접할수 있는 회복지직 공무원 및 사회복지 종사자들이 받는 각종 스트레스에 대해서는 사회적 관심사 밖에 있다. 이들의 직무 스트레스나 하소연을 단지 배부른 소리 혹은 그정도도 받아주지 못하는 사람 정도로 치부하거나 아예 외면해버린다.

폭언, 욕설은 기본이다. 또한 가진것 없다는 이유로 막나가는 행동[3]을 하는 자들을 직접 겪어야 되는 사회복지 계통 종사자들의 스트레스는 이만저만이 아니다. 시달리다가 성격이 이상하게 변하거나, 최소 간혐오, 인간불신에 걸리는 것은 보통이며, 심하면 정신질환이 발병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이들을 현장에서 상대해야 하는 사회복지 종사자나 복지 담당 공무원의 푸념을 오히려 인터넷 이상주의자들이 비난하거나 비꼬기도 한다.

인터넷 이상주의자들의 말처럼 하기 좋은 말, 듣기 좋은 말은 누구나 다 쉽게 할 수는 있지만 실천에 옮기기는 어렵다. 또한 가진것 없다는 이유로 막나가는 행동을 하는 자들을 직접 겪어야 되는 사회복지 계통 종사자들의 스트레스는 이만저만이 아니다. 을 처리하다가 보면 타당한 민원도 사회복지 계통 종사자들의 힘으로는 도저히 해결할 방법이 없는 경우가 잦아서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인데, 악성 민원, 막무가내식 민원까지 들어오면 정말 의욕이 뚝 떨어진다. 심하면 정신질환에 시달리기도 한다.

그럼에도 일부 인터넷 네티즌들은 직접 경험하지 않으면서 이들을 그정도 스트레스도 못견디는 못난 인간으로 매도하고, 약자를 공격하는 비열한 인간들로 몰고 간다. 가난을 무조건 선량함으로 미화하는 이들 중 실제로 가난을 겪어봤는지, 가난한 이들을 돌보거나 지원하는 이가 얼마나 되는지도 의심해볼 문제다.

1.4. 빈곤, 가난과 선량함은 상관관계가 있는가

빈곤, 가난 문제와 선량함, 양심은 상관관계가 전혀 입증되지 않았다. 전혀 서로 상관없는 별개의 문제다.

빈자를 차별하는 사람들은 빈민촌 아이들과 부자 아이들이 같은 학교에 다니면 도둑질과 학교폭력을 당한다면서 가난한 사람을 죄악시하고, 반대로 일부 방송이나 언론, 정치인, 지식인 등 일부 도덕적으로 잘난 척을 하려는 위선자들이 가난함, 빈곤을 무조건 선량함처럼 미화, 왜곡해오기도 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절대빈곤층이나 차상위 계층의 입장에서는 어설픈 칭송보다는 현실적으로 돈, 재산이 굴러들어오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다. 그들에게는 어설픈 예찬보다는 양극화를 해소해주는 것이 그들의 문제점을 해결해주는 것인 셈이다. 빈곤층이나 차상위 계층의 현실을 접촉해본 적도 없는 정치인, 방송 언론인, 지식인, 관료들이 자신들의 지적, 도덕적 우월함을 입증하기 위해서 가난, 빈곤을 미화, 예찬하는 사례들도 많다.[4] 그러나 가난, 빈곤을 미화, 예찬하는 일부 정치인, 방송, 언론, 지식인들이 실제로 절대 빈곤층이나 차상위 계층을 진심으로 이해한다고 볼 수 있는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만약 개인이 사치가 심하다거나 불필요한 낭비를 한다던가 해서 빚이나 생활고에 찌들린다면, 그러한 가난은 착함이나 선량함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

의욕이 없거나, 스스로 일어서려는 능력도 없고 그런 의지도 없다면, 기력함과 의욕없음으로 발생한 이런 가난 역시 착함이나 선량함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

과다한 빚으로 인한 가난. 과시적 소비와 연결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누구도 사치, 과소비를 하라고 강요하지는 않았다. 자기 스스로 자기 수입 이상, 자기 능력치 이상의 소비를 하다가 가난해진 것이고 빚이 생긴 것이라면 그러한 가난은 국가가 나서서 해결해줘야 할 의무는 없다.

게으름이나 불성실함으로 발생하는 가난. 스스로 가난을 선택한 것이라서 더욱 동정의 여지가 없다.

가난을 이유로 자신의 잘못, 범죄에 대한 동정표나 동정심을 얻어보려는 시도가 있었고, 정보력이 부족하던 시대일 수록 그러한 자극이 통해서, 어느정도 정상참작이 되었다. 혹은 국민 정서를 자극하기도 했다. 지존파 등의 유전무죄 무전유죄 같은 것이 그런 케이스. 그러나 가난하다는 이유로 다른사람에게 피해를 입히거나 폐를 끼칠 권리는 아무에게도 없다. 그리고 그것을 정당화, 합리화해서도 안 된다. 은 모든 사람에게 평등해야 되기 때문이다. 비교적 평등하고 중립적, 공정한 기준이 되어야 되기 때문이다.[5]

이 가난을 미화, 예찬하는 이런 일부 방송이나 언론, 정치인, 지식인들이 가난, 빈곤을 미화, 예찬하는데 대해 절대 빈곤층이나 차상위 계층을 언제 제대로 겪어보고, 상대해본 일이나 있는지도 의심스럽다.

도덕적 잘난척, 지적 허세 충족, 혹은 주류에서 배척당한데 대한 원한과 분풀이로 자신은 도덕윤리적으로 우월함을 입증하기 위해서 가난, 약자, 서민을 입에 담는 자들은 오히려 자신의 이익이 충족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약자, 가난, 서민을 증오하거나 하고, 기피한다. 그럴 수 밖에 없는게 이런 정치인, 지식인들은 평소 가난, 약자, 서민을 기피하고, 경멸해왔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1.5. 여담

이 가난 속성이 캐릭터에게 적용되면 빈데레라는 모에 요소가 된다. 그러나 우리가 빈데레에 대해 느끼는 감정도 사실은 모에가 아니라 연민에 가깝다. 스타 트렉에서 나오는 물질재조합장치나 용자왕 가오가이가 파이널에서 나오는 물질창세로같은 물건이 없는 한 없앨 수 없다. 말 그대로 모든 인간들이 부족을 느끼지 않을 만큼의 재화가 모두에게 분배되지 않는 한 끝나지 않을 재앙이라고 보면 되겠다.

2. 기갑전기 드라고나의 등장인물

GANAN, ガナン

성우는 故 사사오카 시게조, 게임판 대역은 오오토모 류자부로.

군젬 사천왕 중 1명으로 기가노스 제국군 군젬 부대 제2중대장. 계급은 대위.

전용 커스텀 메탈아머 스타크 간도라(スターク・ガンドーラ)의 파일럿이다.

마르고 키가 크며, 언제나 못을 물고 있다. 성격은 인범군복을 입었다고 평가받을 정도로 흉폭하다.

켄에게 움직임을 읽혀 기체가 두 동강이 나서 전사했다. 군젬대의 2번째 전사자.

등장은 26화 ~ 37화

2.1. 참조

기갑전기 드라고나 공식 홈페이지
http://www.dragonar.net/character/g1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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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하지만 현실은 놀림거리보다 더욱 무서운 집단따돌림이나 집단괴롭힘 대상이 되는 경우가 매우 흔하다. 반대로 가난한 집 탈선학생들이 모여서 문제를 야기하기도 한다.
  • [2] 공산주의파시즘 국가나 왕조 국가가 아니고서야 법에도 없겠지만.
  • [3] 스스로 하려는 의욕, 의지가 없고 공짜에 기대려는 거지근성, 그리고 매너없는 행동, 욕설 폭언 협박에 기물파손 등
  • [4] 그러한 정치인, 지식인들일 수록 실제 생활고에 찌들리는 사람이 옆에 있거나, 도움을 요청할 때 얼마나 호응하고 협조적일지 의문이다.
  • [5] 누군가를 편애한다는 것이 특권이고, 바로 차별대우로 이어지는 것이다.